코네티컷 숲 속 존 배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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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집주인이 소를 길러 두 개의 외양간이 있는데 그중 하나.

이전 집주인이 소를 길러 두 개의 외양간이 있는데 그중 하나.

200년이 넘는 외양간은 작가의 스튜디오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200년이 넘는 외양간은 작가의 스튜디오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거실에는 존 배 작가의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오른쪽 벽에는 화가 김환기가 선물한 작품이 걸려 있으며, 거실 천장에 걸린 램프는 존 배 작가가 아내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거실에는 존 배 작가의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오른쪽 벽에는 화가 김환기가 선물한 작품이 걸려 있으며, 거실 천장에 걸린 램프는 존 배 작가가 아내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집은 바꿀 수 있지만 땅은 바꿀 수 없어요. 자연은 항상 작업에 영감을 줍니다.” 단단하고 차가운 철로 공간 속 드로잉 같은 조각 작업을 해온 아티스트 존 배의 집은 미국 코네티컷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집 앞 정원에는 사슴과 거위가 새끼들을 데리고 찾아오고, 거북이들이 알을 낳는다. 35년 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브루클린에 살던 존 배와 아내 배은숙은 자연에 둘러싸인 집을 꿈꿨고, 뉴욕 북부와 코네티컷을 오가며 집을 찾다가 〈뉴욕 타임스〉에 실린 이 집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가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주변에 맑은 물이 흐르느냐는 것이었어요. 녹조가 끼는 고인 웅덩이보다 깨끗한 개울을 원했죠. 이곳은 개울이 부지를 가로지르고,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우리가 원하던 모든 조건을 충족했어요.” 존 배는 당시를 회상하며 설명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땅과 달리 1705년에 지어진 집은 상당한 보수가 필요했다. 기존 모습을 유지하면서 집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부부는 신중하게 리모델링을 계획했다. 집을 매입하고 4년 후 건축가와 협력해 시작한 레너베이션에 결국 부부가 직접 나서게 되었고, 존 배는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도전과 장애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2층의 다섯 개 방이 같은 지점으로 열리는 구조라 계단 설계가 어려웠어요. 비율과 각도를 정확히 맞추고 수평과 수직, 곡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그는 집의 원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뉴햄프셔에서 오래된 밤나무와 소나무 판자를 구해 넓은 바닥과 나무 기둥을 만들고, 섬세한 염색 작업으로 색상을 맞췄다. 3년에 걸쳐 수리한 끝에 이 공간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의 작은 영감을 주고받는 장소로 거듭났다.

계단에는 자메이카에서 가져온 수제 동물 조각들이 줄지어 서 있어 귀여운 모습을 연출한다. 벽에 걸린 오브제는 앤티크 향신료 상자.

계단에는 자메이카에서 가져온 수제 동물 조각들이 줄지어 서 있어 귀여운 모습을 연출한다. 벽에 걸린 오브제는 앤티크 향신료 상자.

2층 게스트 룸은 주로 손녀들이 놀러 왔을 때 사용하며, 방에 걸린 작은 그림은 존 배의 아들 아이언이 그린 자화상.

2층 게스트 룸은 주로 손녀들이 놀러 왔을 때 사용하며, 방에 걸린 작은 그림은 존 배의 아들 아이언이 그린 자화상.

존 배 작가는 아프리카와 한국 전통 민속품을 수집했다. 거실과 주방을 이어주는 통로에는 탈곡판이 세워져 있다.

존 배 작가는 아프리카와 한국 전통 민속품을 수집했다. 거실과 주방을 이어주는 통로에는 탈곡판이 세워져 있다.

1층 다이닝 룸에는 집을 사기 10년 전에 구입한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이 테이블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여기서 음악가나 예술가 친구들과 파티를 열기도 한다.

1층 다이닝 룸에는 집을 사기 10년 전에 구입한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이 테이블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여기서 음악가나 예술가 친구들과 파티를 열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을 머금어 더욱 짙게 변한 나무 바닥과 서까래, 앤티크 가구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늑한 온기를 발산하는 공간이 됐다. “우리는 미국 개척시대 양식의 앤티크 가구와 포크 아트를 좋아해요. 종종 함께 앤티크 쇼핑을 다니기도 해요. 앤티크의 매력은 세월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점이에요. 그 물건이 집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과정도 흥미롭죠.” 부부는 이 집을 가족의 삶과 취향을 담아 요리와 음악, 예술 활동을 포용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특히 주방은 기능적 설계가 돋보인다. “처음 이곳을 본 사람들은 전시용 주방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한 끼를 함께하면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임을 알게 돼요. 손님이 우리 집에 오면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을 싸주곤 해요.” 부부는 김치를 담가 보존하기 위해 땅속에 묻는 전통적인 김칫독을 집 안에 마련하는가 하면, 지하 76m의 우물물을 사용하는 등 한국적인 생활상을 이어가고 있다. 거실에는 독일에서 제작된 1905년형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경매에서 구입해 복원한 이 피아노는 자연을 배경으로 그윽한 선율을 울려 퍼뜨리며 여흥의 중심이 된다.

존 배 작가와 아내는 ‘한국음악재단(Korea Music Foundation)’을 후원하며, 매년 100명의 손님을 초대해 그해 선정된 음악가를 위한 콘서트를 이곳에서 연다. 1905년산 스타인웨이 피아노 옆에는 존 배의 작품 ‘Flight of Dreams’가 자리하고 있다.

존 배 작가와 아내는 ‘한국음악재단(Korea Music Foundation)’을 후원하며, 매년 100명의 손님을 초대해 그해 선정된 음악가를 위한 콘서트를 이곳에서 연다. 1905년산 스타인웨이 피아노 옆에는 존 배의 작품 ‘Flight of Dreams’가 자리하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용접하고 있는 존 배 작가.

스튜디오에서 용접하고 있는 존 배 작가.

거실 한편에 자리한 존 배의 작품 ‘Untitled’(1971).

거실 한편에 자리한 존 배의 작품 ‘Untitled’(1971).

스튜디오에는 작가의 작품과 습작이 모여 있다.

스튜디오에는 작가의 작품과 습작이 모여 있다.

거실과 연결되는 작은 서재는 아내 배은숙이 모은 앤티크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

거실과 연결되는 작은 서재는 아내 배은숙이 모은 앤티크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

또 집 안 곳곳에 전시된 존 배 작가의 조각품은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작품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조각의 본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몇 년이 지나서야 눈에 보이는 요소들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업이 이어지기도 해요. 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언가에서 뻗어 나온 가지 같은 거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의 조각 작품 외에도 멘토이자 친구였던 김환기 화가에게 선물받은 그림과 친구 매튜 킴 박사에게 받은 김창열 화가의 작은 작품, 아들 아이언과 딸 리아나, 손주 이마와 미카가 그린 그림들이 함께 걸려 있다. 그는 가족의 작품을 집에 걸어놓는 게 전통이 됐다고 덧붙였다. 예술이 흐르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존 배의 스튜디오가 있다. 200년 된 외양간을 개조한 작업실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으며, 최소한의 작업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작업공간을 단정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도구가 필요할 때 바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작업 효율성을 높이는 실용적인 태도죠. 하고 싶은 작업을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런 작업방식은 그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철이라는 최소한의 재료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복잡한 형태의 조각을 만들어간다. 그 속에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사유의 과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작은 철 조각을 하나씩 이어 붙여 조각을 완성하는 과정을 음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곡을 만드는 작곡에 비유한다. 매일 아침과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존 배는 슈베르트와 슈만, 베토벤, 바흐의 오페라가 가득 울려 퍼지는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리듬을 맞춘다. 존 배에게 ‘집’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삶의 연장이자 그의 예술세계를 지탱하는 근원이다. “집은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 역할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나를 형성해 온 중요한 요소지만, 사라지기 전까지 그 가치를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집이라는 보금자리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돼요. 집은 내가 누구인지 가장 잘 보여줍니다.” 존 배의 70여 년 예술적 여정을 완성한 열정과 몰입은 어쩌면 이 집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재에 함께 있는 존 배와 아내 배은숙.

서재에 함께 있는 존 배와 아내 배은숙.

사과나무가 서 있는 뒷마당은 가족과 친구들이 명절을 함께하고 독립기념일에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손주들의 생일 파티, 딸 리아나의 결혼식 등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마당 앞에 흐르는 강에서 수영도 즐긴다.

사과나무가 서 있는 뒷마당은 가족과 친구들이 명절을 함께하고 독립기념일에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손주들의 생일 파티, 딸 리아나의 결혼식 등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마당 앞에 흐르는 강에서 수영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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