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닛산 차가 똑같아지나?” 2029년부터 자동차 두뇌 함께 쓴다
“합병은 깨졌는데 결국 손잡았다” 혼다·닛산이 함께 만드는 차세대 자동차
경영통합에 실패했던 혼다와 닛산이 다시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회사를 합치는 것이 아니다. 차세대 자동차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자제어장치와 차량용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개발한다.
완성차 사업과 브랜드는 각자 유지하면서 막대한 개발비가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 분야에서는 기술을 공유하겠다는 전략이다.
혼다와 닛산은 지난달 31일 차세대 SDV에 적용할 전자제어장치와 차량용 운영체제, 미들웨어, 차량제어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DV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을 의미한다.
과거 자동차가 엔진과 변속기 같은 기계장치의 성능으로 경쟁했다면 앞으로는 차량에 탑재된 고성능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기능을 결정하는 비중이 더욱 커진다.
스마트폰처럼 차량을 구매한 이후에도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을 개선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혼다와 닛산이 함께 개발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가 ECU다.
양사는 고성능 시스템온칩을 사용하는 메인 ECU와 차량의 각 영역을 담당하는 존 ECU의 사양을 표준화할 계획이다.
쉽게 말하면 자동차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제어 기능을 보다 강력한 중앙 컴퓨터와 영역별 제어장치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방향이다.
하드웨어만 함께 만드는 것도 아니다.
ECU에서 구동되는 차량용 운영체제와 주요 미들웨어, 차량제어 소프트웨어까지 공동으로 개발한다.
결국 차세대 자동차의 두뇌부터 그 안에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기반까지 상당 부분을 함께 구축하는 셈이다.
두 회사가 이처럼 적극적인 협력에 나선 이유는 개발비와 시간 때문이다.
자동차가 SDV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완성차 제조사가 부담해야 하는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고성능 반도체부터 ECU와 운영체제, 인공지능,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까지 각각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개발 인력이 필요하다.
혼다와 닛산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함께 개발하면 중복 투자를 줄이고 신차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도 협력을 서두르게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 업체들은 짧은 신차 개발 주기와 빠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앞세우고 있다. 여기에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AI 기반 인포테인먼트까지 빠르게 적용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기존 방식만 고수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혼다와 닛산이 한때 회사 자체를 합치는 방안까지 추진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는 2024년 8월 차세대 SDV 플랫폼의 기초 기술을 공동 연구하기로 합의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경영통합 협상에 들어갔다.
당시 통합이 성사되면 판매량 기준 세계적인 대형 자동차 그룹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통합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025년 2월 경영통합 논의는 공식 종료됐다.
그렇다고 모든 협력 관계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동화와 SDV처럼 혼자 개발하기에는 투자 부담이 큰 분야에서는 협력할 필요성이 남아 있었다.
이번 계약을 통해 그동안 공동 연구 수준이었던 SDV 협력 관계를 실제 개발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공동 개발한다고 해서 앞으로 혼다와 닛산 차량이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두 회사가 동일한 전기·전자 기반을 활용하더라도 디자인과 주행 특성,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차량의 상품 개발은 각 브랜드가 별도로 진행할 수 있다.
자동차의 기본적인 두뇌와 신경망은 공유하면서 혼다는 혼다답게, 닛산은 닛산답게 차량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첫 결과물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공동 개발한 전기·전자 아키텍처는 2029회계연도 이후 출시되는 차세대 SDV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종이 첫 번째 적용 모델이 될지, 공동 개발 소프트웨어에 어떤 기능이 포함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혼다와 닛산이 선택한 것은 합병이 아닌 기술 동맹이다.
회사와 브랜드까지 하나로 묶는 데는 실패했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차세대 자동차의 두뇌만큼은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이번 협력으로 실제 개발 기간과 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중국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빠른 SDV 전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핵심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