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었습니다” 우회전 차로서 직진한 90세 SUV, 1명 사망
우회전 전용 차로에서 직진
오토바이 2대와 택시 연쇄 충돌
급발진도 오조작도 미확정
직진해서는 안 되는 차로였다

10월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의 한 교차로에서 90세 남성이 몰던 SUV가 속도를 높이며 오토바이 2대와 택시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4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졌고 택시기사와 다른 오토바이 운전자도 다쳤다.
눈에 띄는 대목은 위치다. 사고 차량은 우회전 전용 차로에서 직진하며 속도를 높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회전만 허용된 차로에서 직진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속도 위반과 결이 다르다. 운전자가 어느 차로에 있는지, 어디로 가려는지 알고 있었는지부터 규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는 진술일 뿐 확정된 원인이 아니다. 경찰은 사고기록장치 데이터로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조작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데이터가 가를 두 갈래

브레이크가 안 들었다는 말은 두 가지 전혀 다른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다. 차량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 그리고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밟았을 가능성이다. 둘은 사고기록장치에 남는 신호의 모양으로 구분된다.
■ 기록 항목: 사고 직전 속도, 브레이크 작동 신호, 가속페달 조작량, 조향 정도
■ 구분 방식: 브레이크 신호 없이 가속이 이어졌다면 페달 오조작 가능성도 함께 검토
■ 현재 단계: 급발진, 페달 오조작, 차량 결함 모두 확정되지 않음
■ 관련 통계: 지난해 90세 이상 운전자 사고는 116건으로 4년 전의 약 두 배
비용은 어디서 발생하는가. 이런 사고에서는 원인이 확정되지 않은 채 피해자와 가족이 보험과 형사 절차를 오래 거쳐야 한다. 가해 운전자도 고령이라 책임 능력과 건강 상태까지 변수가 되면서 정리에 시간이 더 걸린다. 사고의 비용은 충돌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쌓인다.
▲ 사고기록장치 분석 결과의 공개 범위
▲ 고령 운전자의 건강·인지 상태가 조사에서 어떻게 확인되는지
▲ 사고 당시 차량 정비 이력
고령이라는 사실만으로 사고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고도 운전자 진술과 조사 결과를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시력검사가 거르지 못하는 것

운전 능력은 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판단하고, 발을 옮기고, 이상 상황에서 즉시 반응하는 연쇄 동작이다. 그런데 면허 갱신 단계에서 가장 비중 있게 확인되는 것은 여전히 시력 같은 신체 조건이다. 75세 이상은 갱신 때 교통안전교육과 인지능력 자가진단을 받지만, 페달을 바꿔 밟는 능력까지 따로 재지는 않는다.
고령 운전자 문제를 연령 규제로만 풀면 반발이 생기고, 자율에 맡기면 사고가 늘어난다. 그래서 필요한 건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검사다. 반응 속도, 페달 전환, 차로 인지처럼 실제 사고와 연결되는 항목을 검사에 넣고 결과에 따라 조건부 면허로 이어 주는 설계가 논의될 만하다.
90세 이상 운전자 사고가 4년 새 두 배가 됐다는 숫자는 고령 운전자가 위험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