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순수 전기차 1위인 미국 테슬라의 ‘전기차 생태계 흔들기’가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올 초 가격 인하 전략으로 전기차 시장 전체를 긴장에 빠뜨린 데 이어 충전 방식이나 부품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유럽,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 중국 기업들의 약진까지 이어지면서 테슬라의 견제가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를 전기차 충전 시스템인 ‘북미충전규격(NACS)’ 우군으로 포섭했다. 지난달 25일에는 포드가, 이달 8일에는 GM이 2025년부터 NACS 충전 포트가 탑재된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본래 GM과 포드는 유럽과 한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합동충전시스템(CCS)을 적용해 왔다. 올 1분기(1∼3월) 기준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이 도합 74.2%에 달하는 업체들이 테슬라가 주도하는 NACS 진영에 서게 된 것이다.
미국 충전 시장이 테슬라 중심으로 개편되자 여타 업체들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완성차 업체 중에서는 유럽과 북미에 거점을 둔 스텔란티스가 “NACS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초고속 충전기 1위 공급 업체인 한국의 SK시그넷도 테슬라 충전 방식을 적용한 제품을 연내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차지포인트(미국), 블링크차징(미국), 트리티움(호주), ABB(스위스)의 북미법인 등도 테슬라 충전 방식을 함께 사용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CCS를 지지하는 국제전기차충전기술협의체 ‘차린’은 “테슬라의 전기차 충전 모델이 아직 표준이 아니다”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NACS 방식으로 충전 규격이 쏠리면 소비자 정보도 테슬라가 독점할 수 있다”며 “충전료 수입이나 충전소에서의 외부 광고 설치 수입 등도 테슬라가 가져간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1960년대부터 12V(볼트)로 표준화가 됐던 자동차 전기장비 부품의 전압에도 변화를 예고했다. 올 3월 ‘투자자의 날’ 행사에서 앞으로 개발하는 차량에 48V 기반의 전기장비를 적용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48V 체제로 바뀌면 배선이 단순화돼 차량 1대당 전선 길이가 최대 4㎞ 짧아지고, 이에 따른 중량이 30∼60㎏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 정책도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 배터리 업체 CATL 등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차량에 공급받기로 하면서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 업체들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테슬라가 가격 경쟁력으로 치고 나가자 ‘제2의 테슬라’로 불렸던 리비안이나 루시드 등의 스타트업들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테슬라가 생태계를 뒤흔드는 것은 전기차 후발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지금의 견고한 위치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어서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들도 지난해 62%대였던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026년에는 18%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테슬라 입장에선 ‘우울한 미래’를 막기 위해 전기차 생태계를 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홍영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미래모빌리티실증센터장도 “영업이익률을 다소 낮추더라도 일단은 경쟁자들을 밀어내 버리겠다는 전략”이라며 “한국 완성차 업체들도 일단은 추이를 지켜보면서도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