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자동차(005380)그룹은 엔트리급 EV모델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000270)는 내달 출시하는 경형 전기차 레이 EV에 중국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한다.
기아가 이날 사전계약 시작(24일)을 알리며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레이 EV는 35.2kWh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주행거리 복합 205㎞·도심 233㎞를 확보했다. 150kW급 급속 충전기로 40분 충전 시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으며 7kW급 완속 충전기로 6시간 만에 배터리 용량 10%에서 100%까지 충전할 수 있다.
그간 현대차그룹은 국내 배터리사와 협력해 전기차를 생산해 왔지만 저렴한 가격이 큰 무기인 엔트리급 모델에는 저렴한 중국산 LFP 배터리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 것이다. 국내 배터리사는 아직 LFP 배터리를 양산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가 내년 출시 예정인 경형 전기 SUV 캐스퍼 모델에도 중국산 LFP 배터리가 사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와 현대차 코나 하이브리드에 CATL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하며 중국산 배터리 사용에 신호탄을 쐈다.
KG모빌리티가 내달 출시하는 토레스EVX에도 중국 비야디(BYD)의 LFP 배터리가 들어간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게 되면 300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회 충전으로 433㎞를 달린다.
LFP 배터리는 국내 업체가 주력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과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삼원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거리가 짧다. 다만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지속된 기술개발로 주행거리도 눈에 띄게 길어졌다.
최근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파괴’에 나서며 ‘가성비 전기차’ 출시에 열을 올리는 상황도 LFP 배터리의 입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전기차 판매 증가세 둔화 분위기와 연결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3.7% 늘었지만, 지난해 증가율(75.6%)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기차에 관심이 있던 ‘얼리 어답터’형 고객들은 이미 구매를 마쳤고, 남은 소비자들은 여전히 높은 전기차 가격에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이 때문에 가격을 낮추지 않고서는 추가적인 전기차 판매 확대가 어렵다는 인식이 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연일 파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하고 있며 가격 인하 전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의 배경에는 LFP 배터리가 있다. 테슬라가 지난달 국내에 출시한 중형 SUV 모델Y 후륜구동 모델 가격은 기존 대비 2000만원 가량 낮은 5699만원이다.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Y에 저렴한 CATL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 때문에 미국 전기차 업체 루시드도 최근 주요 모델 가격을 최대 11% 인하하는 등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이 속속 가격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 3사인 벤츠·BMW·아우디 역시 10~20%대의 전기차 할인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이 같은 추세에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뒤늦게 LFP 배터리 개발에 착수했지만 양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영향력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사용을 기피해 왔지만,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기차 가격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LFP 배터리로 눈을 돌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