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죽고 사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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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시속 10km 차이가 운전자를 행복하게 해줄까

사진 Anne Nygård, Unsplash
사진 Anne Nygård, Unsplash

우리나라에서 한해 교통사고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해는 1991년이었다. 13,429명이 차에 치어 죽었다. 다행히 2013년부터는 꾸준히 줄어 2022년에는 사망자 2,735명으로 감소했다. 1970년 이후 가장 적다.

바람직한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은 보도자료에서 “관계부처, 경찰청 및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교통안전 대책과 성숙된 교통안전 의식이 합쳐진 성과”라고 밝혔다. 여기서 방점을 찍을 단어는 ‘대책’과 ‘의식’이다. 잘 세운 대책과 잘 지키려는 의식. 두 가지가 교통선진국을 만든다.

2년 전, 경찰청은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시행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시내 차량 속도를 기존 60km/h에서 50km/h로, 학교 주변 등 이면도로에서는 30km/h로 제한하는 정책이다.

효과는 즉시 나왔다. 2021년 속도 제한 도로에서 사망자 수가 27.2% 줄었다.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융통성이 없다, 탁상행정이다, 현실적이지 않다 등. 언론도 비판에 가세했다. 어느 교수는 칼럼에서 속도를 제한하면 오히려 운전자에게 스트레스를 줘 역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정부는 불만에 적극 화답했다. 정책을 폐기했다. 취지는 좋지만 탄력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당 대표는 “이 정책이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예외를 두고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도 60km/h로 표지판을 바꿨다. 운전자들은 환호했다. 10km 때문에 속이 시원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까? 서울 도심 차량 평균 시속은 20km가 되지 않는다. 외곽 도로 역시 25km/h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10km 속도를 올리면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는 걸까. 알 수 없다. 시속 10km를 줄였을 때 목적지 도착 시간은 겨우 2분 차이라는 조사도 있다.

파리는 2021년부터 시내 전역의 차량 속도를 30km/h로 제한했다. 우버 종사자를 비롯해 운전자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미 파리 시내 평균 주행속도가 20km/h 정도여서 비현실적 규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교통불편 때문에 파리가 주행속도를 올렸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시속 30km 제한을 시행한 도시는 많다. 브뤼셀, 빌바오, 밀라노와 볼로냐 역시 도심 차량 속도를 강력 제한한다. 뉴욕은 2014년부터 모든 로컬 도로에서 40km/h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뉴욕 주민들이 운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을 때 도로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권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데 우리는 왜 규정을 완화하냐고 불평하려는 게 아니다. 정책 입안과 시행에는 근거가 있다. 속도를 줄였을 때 더 안전해졌다는 것은 통계가 증명한다. 그런데 정책을 뒤집는 데는 근거가 빈곤하다. 통계 아닌 감성적 수사가 동원된다. 탄력적 운영, 융통성 발휘, 국민 정서 같은 모호한 화법 말이다.

안전은 타협할 수 없다. 불편이 이유가 될 수 없다. 인명이 걸린 규칙에 예외와 융통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문화가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시간을 줄일 유일한 방법은 단호함과 일관성 유지밖에 없다.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감수하기 싫을 뿐. 수시로 바뀌고 예외와 융통성이 적용되는 법과 규칙을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글·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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