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충복 vs 강경 통화주의자” 연준 의장 유력 후보 둘러싼 두 시선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워싱턴=AP/뉴시스]](https://www.fortunekorea.co.kr/news/photo/202512/50846_44587_139.jpg)
국가경제위원회(NEC)를 이끄는 케빈 해싯(Kevin Hassett)이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임 레이스에서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예측 시장에선 해싯이 가장 앞선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도 “누구를 지명할지 알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힌트를 던졌다.
백악관은 크리스마스 무렵 발표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경제학자와 전·현직 동료들의 반응은 기대와 불안 사이에서 엇갈리고 있다.
해싯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를 뛰어난 정책 설계자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오랜 측근이자 전 백악관 고문인 스티븐 무어(Stephen Moore)는 해싯을 “달러 가치를 지킬 강경 통화주의자(hard money guy)”라고 평가했다. 반면 일부 옛 동료들은, 그가 대통령의 경제 참모가 된 뒤 “기관의 독립성과 객관적 진실보다 상사의 입맛을 우선하는 정치적 충복”으로 변했다고 우려했다.
해싯은 요즘 케이블 뉴스에 자주 등장해 트럼프의 정책 기조를 두둔하고, 백악관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불리한 통계를 축소하고, 인플레이션부터 연방 통계의 신뢰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최근에도 그는 NEC 국장 자격으로 “인플레이션은 이미 크게 내려왔고, 물가 흐름은 정말, 정말 좋다”고 주장했다. 당시 공식 통계에서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의 변신이 왜 옛 동료들에게 경고등으로 보이는지 이해하려면, 해싯이 걸어온 경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이전의 해싯은 전형적인 ‘메인스트림 보수 경제학자’였다. 연준과 컬럼비아대에서 근무했고, 존 매케인·조지 W. 부시·밋 롬니의 대선 캠프에서 경제 자문을 맡았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EI)와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에서도 활동했다.
2017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으로 지명됐을 때는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등 전직 연준 의장들이 공개 지지 서한에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의 1기 백악관에서 해싯은 2017년 법인세 감세안을 설계하고 홍보하는 핵심 인물이 됐다. 당시 그는 감세가 투자와 제조업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코로나19 시기에는 경제 정책 수석 고문으로 다시 백악관에 복귀했다. 지금은 국가경제위원회 수장을 맡으며 트럼프 2기 경제 어젠다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번엔 역할이 더 공격적이다. 해싯은 트럼프의 대표적인 ‘경제 대변인’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내가 지금 연준을 이끈다면 금리를 당장 내릴 것”이라며 “데이터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식 정책 조합, 즉 미국 내 공장에 대한 법인세 인하와 신규 산업정책이 2026년에 “절대적인 대박 성장(absoulte blockbuster year)”을 이끌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연준과 연준이 활용하는 통계까지 공격하는 데도 앞장섰다. 연준이 “자기 책무보다 정치적 계산을 우선한다”고 비난하고, 금리 인하에서 “게임에 너무 늦게 뛰어들었다”고 깎아내렸다.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 BLS)이 내놓는 고용 통계에 대해서는 “정파적 패턴이 있다”며 정치적 편향을 의심하는 발언까지 했다. 트럼프가 BLS 에리카 맥엔타퍼(Erika McEntarfer) 국장을 해임하고 “조작된 숫자”라고 공격했을 때, 해싯은 웃는 얼굴로 방송에 나와 이를 ‘정확성과 절차의 문제’로 포장했다.
이 지점에서, 과거 그를 지지하던 인사들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프로그레시브 성향 경제학자 딘 베이커(Dean Baker)는 과거 해싯과 공동 논문을 썼고, CEA 의장으로 지명됐을 때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해싯은 좋은 연준 의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해싯은 놀라울 정도로 불성실해졌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BLS 통계를 분석해 온 베이커는 해싯이 말한 ‘정치적 편향’ 주장은 “전혀 진지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일축한다. BLS의 통계 산출 방식은 공개돼 있고, 내부·외부 연구를 토대로 계속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더 우려하는 건 해싯이 정말로 통계가 ‘조작됐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알면서도 기꺼이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커는 “해싯이 자신의 전문적 판단에 따른 결정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며 “도널드 트럼프가 하라고 말하는 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해싯과 비슷한 경로를 밟았던 벤 버냉키를 비교 대상으로 꺼냈다. 버냉키 역시 공화당 대통령(조지 W. 부시) 아래에서 CEA 의장을 지낸 뒤 연준 의장으로 옮겼다. 그러나 “버냉키는 경제자문위원장 시절 스스로를 깎아내린 적이 없다”며 “부시의 정책을 옹호하긴 했지만, 명백한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해싯은 데이터 논쟁을 넘어서 트럼프의 불만에 ‘법적 논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월, 워싱턴 D.C. 연준 본부 에클스 빌딩(Eccles Building) 리모델링 공사 비용 초과를 근거로, 파월을 중도 해임할 수 있다는 법적 논리를 제시했다. 25억 달러 규모 프로젝트에서 7억 달러의 초과 비용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부실 경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빌미로 트럼프가 파월을 쫓아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CEA 의장을 지낸 하버드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Greg Mankiw)는 포춘에 보낸 이메일에서, 트럼프 정책을 옹호하는 해싯의 최근 행보를 보며 “TV를 보기 괴롭다”고 적었다. 경제적으로 무지한 정책들을 “격렬하게 변호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그러면서도 그는 “해싯을 좋아하고, 좋은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며 관건은 “연준 의장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독립성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느냐”라고 짚었다.
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해싯은 트럼프에 충성하는 인물”이라는 비판은 기득권의 과도한 걱정으로 치부된다. 전 백악관 고문이자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선임연구원인 무어는 해싯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인물”이라고 단언한다.
무어는 “그보다 더 나은 후보를 떠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싯은 연준의 역할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25년간 해싯을 지켜봤다는 전 BLS 국장 윌리엄 비치(William Beach)도 강한 옹호론을 펼쳤다. 비치는 해싯을 “훌륭한 경제학자”라고 평가하며, “은행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런 역량은 “어느 연준 의장에게나 필수”라는 설명이다.
다만 해싯의 BLS 고용 통계 불신 발언에 대해 묻자, 그는 답변을 피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신 “연준은 항상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통계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는 과거 그의 발언과 대조적이다. 비치는 이전 포춘 인터뷰에서, 공식 고용 통계를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처럼 묘사하려는 시도를 두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연방 통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건 매우 위험하다”며 “시장도 고용 지표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이번에는 그런 우려를 뒤로 하고, 오랜 인연과 해싯 개인의 “건전한 판단력”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해싯이 “연준과 미국 경제의 이익을 최우선에 둘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해싯 본인은 자신이 차기 연준 의장 ‘0순위’로 거론된다는 소식에 시장이 호응하는 모습을 반겼다. 하지만 연준을 오래 지켜본 전문가들 눈에는 채권 시장에서 경고 신호가 켜진 것으로 보인다.
스톤엑스(StoneX) 선임 고문이자 월스트리트저널 연준 담당 기자 출신인 존 힐젠라스(Jon Hilsenrath)는 해싯 카드가 부상한 직후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즉각 뛰어오른 점을 주목했다.
그는 링크드인 글에서 “수익률 상승은 해싯 체제의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더 관대해질 것이라는 베팅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를 더 용인할 수 있다고 본다면, 장기 채권 투자자는 그만큼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힐젠라스는 또 “연 4% 안팎의 수익률이 표면적으로는 감당할 만해 보이지만, 현재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재정 적자가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예외적으로 낮은 수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연준의 독립성과 물가 안정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이 괴리가 “폭력적으로 해소되며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는 베이커가 말한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리스크와 맞닿아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할 용기를 잃은 참모들, 겉으로는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행정부, 여기에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는 연준까지 겹치면 채권 시장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커는 “경제를 어떻게 굴러가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트럼프가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언제나 트럼프”라고 말했다.
/ 글 Eva Roytbu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