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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하면 짐 싸는 2인자? CEO 승계 전쟁에 ‘은메달’ 없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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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지난해 11월 월마트(Walmart)는 미국 사업 총괄 존 퍼너(John Furner)를 차기 CEO로 지명했다. 세계 최대 소매업체의 역사상 6번째 수장을 정한 셈이다.

이 결정은 동시에, CEO 후보로 거론되던 또 다른 인물의 미래를 조용히 닫아버렸다. 월마트 인터내셔널(Walmart International) CEO이자 10년 넘게 회사에 몸담아 온 캐스 맥레이(Kath McLay)다. 월마트는 최근 맥레이가 회사를 떠난다고 공시하며,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짧은 기간 남아 전환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은 빠르고 질서정연했는데, 기업 승계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회는 대개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경험 많은 임원들은 CEO가 정해지는 순간부터 이전까지 ‘유력 후보’로 속삭이던 내부 인사들의 장기 전망이 급격히 흐려진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안다. 권력이 새 CEO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기업의 야심 있는 리더들은 승계 결정 이후 오래 머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리고 종종 빠르게 움직인다. 역설적으로 이사회가 선택을 끝낸 직후가 ‘준(準) CEO’급 임원의 시장 가치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최고위 단계에서 검증받았다는 신호가 찍힌 상태다. 최고 자리까지 실제로 검토될 만큼 ‘충분히 가까웠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러면서도,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길어질 때 따라올 수 있는 평판의 부담은 아직 흡수하지 않은 시점이다.

시장이 주목하는 건 여전히 ‘능력’이다. 헤드헌터와 이사회 구성원들은 최종 문턱에서 미끄러진 사람을 보기보다, 규모와 복잡성이 큰 조직을 맡아본 경험이 있고 이사회 검증도 견딘 리더를 본다.

2001년 제너럴일렉트릭(GE·General Electric)이 제프 이멜트(Jeff Immelt)를 CEO로 지명했을 때도 비슷했다. 당시 승계 경쟁은 현대 기업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주목받았다. 유력 후계자로 길러진 인물 가운데 하나가 GE 파워 시스템즈(GE Power Systems) 사장이자 CEO였던 밥 나델리(Bob Nardelli)였다. 나델리는 결과를 지켜보며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달 안 돼 GE를 떠나 홈디포(Home Depot) CEO가 됐다.

10년 뒤 애플(Apple)에서도 결은 달랐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리테일 총괄 론 존슨(Ron Johnson)은 애플스토어를 업계를 정의하는 고수익 글로벌 사업으로 키웠고, 내부에서 CEO급 인물로 널리 평가받았다.

그러나 애플 이사회는 오래전부터 승계의 중심을 팀 쿡(Tim Cook)에 두고 있었다. 쿡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후임으로 공식 지명되자, 존슨의 CEO 경로는 사실상 닫혔다. 그는 곧 회사를 떠나 J.C.페니(J.C. Penney) CEO를 맡았다.

승계 결정 직후 빠르게 떠나는 임원들은 ‘의리 없음’을 택하는 게 아니다. 현실을 택하는 것이다. 승계가 결론 난 뒤에도 너무 오래 남아 있으면, 내부와 외부에서 입지가 서서히 깎일 수 있다. 서사가 “차기 주자”에서 “아직도 기다리는 사람”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포드(Ford Motor Co.)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당시 사장 조 힌릭스(Joe Hinrichs)는 유력 CEO 후보로 평가받았다. 이사회가 2017년 짐 해킷(Jim Hackett)을 선택하자, 힌릭스는 오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 그로부터 5년 뒤 그는 운송 기업 CSX의 CEO로 돌아왔다. 디즈니(Disney)에서도 2020년 밥 채펙(Bob Chapek)이 CEO로 낙점된 뒤 여러 고위 임원이 떠나거나 주변으로 밀려났다. 특히 스트리밍·국제 사업을 총괄하던 케빈 메이어(Kevin Mayer)는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몇 달 만에 회사를 떠나 틱톡(TikTok) CEO를 잠시 맡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다만 궤적이 다르다. 나이키(Nike)의 오랜 내부 인사였던 엘리엇 힐(Elliott Hill)은 공식 승계 경쟁에서 ‘탈락’한 사례는 아니었다.

하지만 2020년 이사회가 외부 인사를 택했을 때, 그는 CEO를 맡을 준비가 된 인물로 널리 평가받았다. 힐은 몇 년 더 남아 있다가 은퇴했다. 이후 실적 압박이 커지고 전략 리셋이 진행되자, 나이키 이사회는 2024년 힐에게 CEO 복귀를 요청하며 결정을 뒤집었다. 그래도 이런 ‘부메랑’ 사례는 극히 드물다.

맥레이의 월마트 퇴사는 ‘주류 패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결정이 난 직후 신속히 떠나되, 정해진 전환 기간 동안 인수인계를 돕는 방식으로 자신의 평판과 협상력을 동시에 지킨다. 그는 ‘충분히 유력해 실제로 검토된 인물’로 떠난다. 승계 과정에 오래 남아 이미지가 닳을 때까지 기다린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  Ruth Umoh &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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