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꺼낸 ‘고독한 인류’의 생존 전략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워싱턴=AP/뉴시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4-0163/image-c084b4fe-efe8-4513-bc73-53f3bd1b9ba8.jpeg)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자신이 여러 차례 “외계인”이라고 주장해왔고, 그 말을 세계경제포럼(WEF) 무대에서도 다시 꺼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지구 밖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리고 이 믿음이야말로 자신의 기술 사업과 약 6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통하는 기본 전제라고 말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대담에서 머스크는 블랙록(BlackRock) CEO이자 WEF 임시 의장인 래리 핑크(Larry Fink)와 마주 앉아 “지구 밖에 생명체가 있을지 늘 질문을 받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나는 그중 하나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농담인지, 어떤 의도를 가진 발언인지 분명치 않은 뉘앙스였다.
핑크는 “아니면 미래에서 온 거 아니냐”고 받아쳤다. 머스크가 과거 자신을 “3000년 된 시간여행 뱀파이어”라고 부른 적이 있다는 점을 떠올린 반응이었다.
머스크는 곧바로 핵심 메시지를 전했다. “결론은 이거다. 생명과 의식(consciousness)은 극도로 희귀하며, 어쩌면 우리뿐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의식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지적 생명체가 우주에 흔치 않다고 가정할수록, 인류를 보존하는 프로젝트는 더 긴급해진다는 논리다.
머스크의 ‘인류 보존’ 구상은 10여 년 전부터 구체화됐다. 그는 2015년 샘 올트먼(Sam Altman)과 함께 오픈AI(OpenAI)를 공동 설립했던 배경도, 막 태동하던 AI 기술이 가져올 실존적 위험과 안전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핑크에게 시가총액(또는 기업가치) 기준 각각 1조 4000억 달러, 800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는 테슬라(Tesla)와 스페이스X(SpaceX) 역시 같은 신념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단지 지속가능한 기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풍요(sustainable abundance)”를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주장이다.
머스크는 미래의 풍경으로 “일이 선택 사항이 되는 세상”을 제시했다. AI와 로보틱스가 인간 노동의 부담을 크게 덜어, 사람들에게 ‘일자리’는 물론 ‘돈’조차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로보틱스와 AI야말로 모두의 풍요로 가는 길”이라며 “전 세계 빈곤을 해결하거나, 모두가 매우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게 하려면 결국 방법은 AI와 로보틱스뿐”이라고 말했다.
머스크가 그리는 그림은 ‘수십억 대의 로봇’이 인간보다 더 많아지고, 아이와 노부모를 돌보는 일까지 수행하는 세계다. 그는 “올해 말까지 기능하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몇 년 안에 소매 판매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로봇은 아직 일정 차질을 겪어왔다. 머스크는 불과 이틀 전에도 로봇 생산과 테슬라의 무인차 ‘사이버캡(Cybercab)’ 제조가 초기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릴 것”이라며, 이후에야 생산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과거 보편적 기본소득(UBI) 등을 통해 사람들이 노동 없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이번 대화에서는 그 소득을 현실화하기 위한 정치적 절차나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았다.
‘인류 보존’의 무대는 지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화성 샷(Mars-shot)”이라고 표현해 왔다. 인간을 화성에 정착시키는 구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 목표는 테슬라의 공시 문서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머스크는 화성을 인류 미래를 위한 ‘보험’으로 여기며, 장기적으로는 이를 발판으로 자원 확장과 의식 탐구를 더 넓은 우주로 확장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화성에서 죽고 싶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며 “그렇다. 다만 충돌(impact)로 죽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머스크의 외계 생명관은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과도 맞닿아 있다. 페르미 역설은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거의 없다는 모순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1950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가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동료들과 대화하던 중 “다들 어디 있나(Where is everybody?)”라고 던진 질문이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질문은 이후 칼 세이건(Carl Sagan) 등의 논의로 확산되며 대중적으로도 ‘페르미 역설’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머스크는 2023년 X(옛 트위터)에 “인간은 어둠의 심연 속에서 의식이라는 작은 촛불 하나”라고 썼고 “페르미 역설의 가장 무서운 해답은 외계인이 아예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22년에는 이 역설을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인 ‘페르미의 위대한 필터(Fermi Great Filter)’를 형상화한 조형물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지적 문명이 생존을 위해 넘어야 하는 일련의 장벽이 존재하며, 그 장벽을 극소수만 통과한다는 가설이다.
조형물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거대한 포크 형태로, 문명이 생존을 위해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머스크가 즐겨 써온 ‘포크 인 더 로드(Fork in the road)’ 비유와도 겹친다.
하지만 머스크의 철학은 비판도 낳는다. ‘인류를 지킨다’는 명분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물리학연구소(AIP)의 역사학자 레베카 샤르보노(Rebecca Charbonneau)는 2025년 2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은 글에서, 머스크의 ‘인류 보존’ 담론이 기술 업계 전반에 퍼진 더 큰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샤르보노는 냉전기의 불안(페르미 역설이 확산된 시기와도 겹친다)이 남긴 흔적 속에서, 일부 기술 리더들이 ‘무한한 번영’ 아니면 ‘사회 붕괴’라는 가짜 이분법을 전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머스크를 포함한 일부 인물들이 ‘인류의 멸망’을 피한다는 이름으로 극단적인 조치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샤르보노는 이런 생존주의적 관점이 미래를 ‘여러 방식의 번영이 공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파국을 피하기 위한 절박한 경주’로 재단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머스크가 X에서 인력 감축을 추진할 때, 그리고 ‘DOGE(정부효율부)’의 사실상 리더로서 연방정부 구조조정에 관여할 때 사용한 ‘포크 인 더 로드’ 전략도 같은 맥락이라고 봤다.
머스크는 DOGE를 “관료주의의 전기톱(chainsaw of bureaucracy)”이라고 부르며 연방 지출 2조 달러 삭감을 공언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원 감축과 계약 취소를 통해 약 1500억 달러를 줄이는 데 그쳤다. 연방 공무원들은 이런 삭감이 업무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유용한 자원이 사라지면서 처리 시간이 길어지고 행정의 질도 떨어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샤르보노는 머스크식 철학이 미묘한 맥락을 지워버리고, 기관과 사회를 ‘섬세한 상황’에 대한 과격한 대응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류의 과제를 복잡한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엔지니어링 문제로 규정함으로써, 기술자들은 사회·정치·협업의 더 지저분하지만 필요한 변화를 우회한 채 자신을 미래의 결정한 설계자로 위치시킨다”고 지적했다.
/ 글 Sasha Rogelberg & 편집 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