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년이’ PD가 밝힌 제작기, ‘국극 연출’부터 ‘과장된 캐릭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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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촬영 현장에서 국극 무대를 연출하는 정지인 PD. 사진제공=tvN

지난 17일 종영한 tvN 드라마 ‘정년이’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출발했지만 한편에서는 의구심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국극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는 남녀의 로맨스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주인공인 윤정년(김태리)을 둘러싼 우정과 경쟁, 연대 등 여성 중심의 서사에 오롯이 집중했다. 드라마의 원작인 서이레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이 큰 인기를 끌었으나 원작의 팬들은 핵심 캐릭터인 권부용이 사라졌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방송 전부터 매서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면서 공개된 ‘정년이'(극본 최효비)는 완벽한 무대를 치열하게 고집하는 여성 예인들의 모습을 그리며 시청자들을 국극의 세계로 초대했다. 극중 정년이의 말처럼 그야말로 “별천지의 세상”을 생생하게 옮겨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국극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주인공 김태리와 함께 ‘정년이’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연출자인 정지인 PD다. 드라마 종영 직후 서면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정 PD는 “시청자 반응 가운데 국극에 대한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이런 걸(국극의 무대) 집에서 돈 내지 않고 봐도 되냐는 댓글들이 인상적이었다”며 감사해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가 다룬 국극을 향한 관심이 뜨거웠지만 처음부터 국극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연출자가 지닌 가장 큰 과제였다. “고민이 많았어요. 국극은 당시 관객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어요. 우리 시청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입장하는 듯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죠.”

● “일주일 내내 이어진 국극 촬영과 연습” 

‘정년이’는 1950년대 중후반을 배경으로 가진 것 없는 목포 소녀 정년이가 당대 인기 국극단인 매란국극단에 들어가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정년이는 조력자를 만나고, 라이벌과 경쟁하고 동지와 연대하며 꿈을 펼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년이의 성장과 함께 시청률도 반등했다. 첫 회 4.8%(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출발한 이 작품은 마지막 방송이 16.5%의 최고 기록으로 막을 내렸다.

‘정년이’는 12회 안에 ‘춘향전’을 시작으로 ‘자명고’ ‘바보와 공주’ 그리고 ‘쌍탑전설’까지 4번의 국극 무대를 극중극(드라마 속 삽입되는 작품)의 형식으로 선보였다. 배우와 제작진은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공을 들였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라 ‘국극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김태리, 신예은, 정은채, 김윤혜, 우다비, 오마이걸 승희 등 배우들은 국극 무대를 표현하기 위해 소리와 춤, 검술 등을 갈고닦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정지인 PD 또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총력을 기울인 건 국극 장면들이었다”고 말했다. 정 PD에 따르면 보통 일주일에 2~4일씩 드라마 촬영을 진행하고, 나머지 날 배우들은 소리 등 국극 연습에 집중했다. 일주일 내내 촬영과 연습을 병행하는 강행군이었다. 스태프들은 틈틈이 국극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준비에 몰두했다. 총 4편의 국극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운데 이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 편당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정지인 PD가 가장 공들여 찍었다고 말한 10회 엔딩 장면. 사진제공=tvN

국극을 제외한 촬영 중 가장 공들인 장면은 10회의 엔딩을 장식한 문소리의 ‘추월만정’이다. 정년이는 잘못된 훈련을 고집하다가 결국 소리꾼으로서 최악의 장벽인 고음을 내지 못하는 일명 ‘떡목’이 된다. 그런데도 국극을 계속하겠다는 집념을 보이는 정년이의 꿈을 마침내 인정하는 엄마 용례(문소리)가 새벽녘 바닷가에서 갈라지고 퍼석해진 소리로 한과 울부짖음이 섞인 ‘추월만정’을 부르는 장면이다. 문소리는 이 장면을 위해 1년간 무려 1000번 이상 연습을 거듭했다.

정지인 PD는 당시 촬영을 돌이키면서 “적합한 장소를 촬영 시기가 임박해 겨우 구했다”며 “일출과 밀물, 썰물 시간대를 몇 달 전부터 계산해 두 번에 걸쳐 촬영했다. 단 한 장면을 이렇게 오래 준비해 찍은 건 연출하면서 처음이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어렵게 찾은 장소는 경남 고성의 시루섬이다. 정 PD는 “며칠에 걸쳐 촬영했지만 훌륭한 감정선을 연기한 두 배우 덕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문소리, 김태리에게 공을 돌렸다. 

● “과장된 정년이의 감정, 호불호 예상”

100회가 넘는 방대한 원작을 12부작에 담는 과정에서 드라마는 정년이가 겪는 사건과 감정을 빠른 속도로 전개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정년이의 감정 변화에 “당황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특히 정년이가 극중극인 ‘자명고’에서 ‘군졸1’이라는 단역을 맡았지만 무대 위에서 자신의 감정에 취해 적벽가의 ‘군사설움’을 폭발적으로 내지르거나, 또 다른 국극 ‘바보와 공주’의 오디션을 앞두고 초록(송희)과 영서(신예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을 가혹하게 혹사하는 모습은 ‘정년이의 성장통’으로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반감을 살 만큼 극단적으로 과장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정지인 PD 역시 “호불호가 갈릴 것은 예상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어 “(정년이의 선택은)스스로를 망치면서 열정을 쏟는 순간들이기에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만큼 어떤 경지에 도달하길 원하는 (예인의)간절한 열망은 이해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보와 공주’ 오디션 때 정년이를 믿고 따르던 주란(우다비)이 파트너로 돌연 영서를 꼽은 선택에 관해서도 부연했다. 당시 정년이가 지닌 감정에 대해 정 PD는 “스스로의 재능이 부정당하고 일종의 절망을 불러일으켰다”며 “국극단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한 길만 보던 정년이 같은 사람에게 감정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과 감정이 시청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한계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정년이라는 예술가를 온전히 이해시킬 수 없어도 (그가 느끼는)절망의 깊이가 조금이라도 시청자에게 닿았기 때문에 그래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봐주지 않았을까 해요. 실제 김태리씨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건 배우들의 숙명이기도 하니까요. 이를 관찰하고 전달하는 건 저의 몫이죠. 만약 불호의 입장이 많았다면 이는 좀 더 섬세하게 연출하지 못한 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PD는 고민을 함께 나눈 “김태리의 열정과 노력은 우리 작품을 떠받치는 큰 원동력이었다”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순간이 올 때 정년이를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정지인 PD(왼쪽)와 김태리. 사진제공=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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