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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음색 위로 봄날의 기억이 다시, 조용히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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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지금 여기에 재즈를 만나다. = 공연 포스터 이미지
     우리, 지금 여기에 재즈를 만나다. = 공연 포스터 이미지

[뉴스플릭스] 이동현 기자 =만물은 흐른다. 지금도 흐르고 있는 물결은 시야 속에서 점점 멀어진다.

2026년 5월 9일 오후 5시 30분, 카페 슈베르트 콘서트홀에서는 머릿속에 그려온 재즈가 피아노, 드럼, 베이스를 통해 서정적인 음색으로 피어오른다.

만물은 흐른다. 그리고 멀어지는 물결 너머, 해안선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해진다. 재즈가 그렇다.

정해진 틀보다는 즉흥과 변주의 리듬으로 이루어진 재즈는, 여러 악기를 통해 끊임없이 탄생하고 다시 태어난다. 특히 미국 할렘가에서 시작된 피아노의 건반 위에서는, 고정된 악보를 벗어나 춤추듯 흐르는 ‘즉흥’이라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재즈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변주, 섬세한 타이밍, 연주자 간의 감각적인 교감까지 요구되는, 깊은 난이도의 음악이다.

재즈 피아노에서 왼손은 리듬을 세우고, 오른손은 즉흥적인 멜로디를 풀어낸다. 이 단순해 보이는 구조 속에는 ‘의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컨트리와 포크, 유럽의 민속과 클래식, 라틴과 전자음악까지 얽혀 있는 재즈는 피아노 위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특히 재즈는 확장된 예술의 한 형식으로, 우연과 잉여의 존재를 다시 확장하는 온기 어린 입김처럼 번져가는 음악이다.

유충식, 그는 30여 년 동안 재즈 피아노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온 연주자다. ‘재즈스럽다’는 말이 어쩌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의 연주는 그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듣는 이에게 재즈는 여전히 복잡하고 애매할 수 있다.

그러나 유충식 재즈밴드의 연주에는 분명한 ‘결’이 있다. 클래식의 구조, 라틴의 리듬, 전자음악의 감각이 한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 더불어 동양적인 미감의 ‘결’이 더해져, 인위적이라기보다 흐름을 따르는 듯한 부드러움과 거침을 동시에 품어낸다. 

“그동안 공연과 앨범 작업을 이어오며, 재즈를 조금 더 따뜻하게 대중 곁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국악과 트로트, 클래식 등 어우러지는 결 속에서 서로 다른 숨결들이 하나의 하모니로 스며들기를 바랐다”고 재즈 피아니스트 유충식은 말한다. 이어 그는 “재즈를 만날 때마다 가슴 한켠이 설레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피어나는 낯선 음의 싱그러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전율이 나를 30여 년의 시간 속으로 이끌어왔고, 결국 재즈는 내 심장의 박동처럼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었다”고 조용히 덧붙였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툼 없이 품어내는 유충식의 재즈 피아노는, 부딪치는 바다의 파도를 포옹하며 아우르는 우뚝 선 ‘섬’과 같다

서두에서 말했듯 그의 피아노 선율은 물결처럼 흐른다. 때로는 얕은 시냇물이 작은 돌에 부딪히듯 흔들리지만, 결국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재즈는 불협화음과 텐션을 통해 색을 만들고, 주어진 코드 안에서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멜로디와 화성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과정은 숙달된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간, 공기, 그 순간의 분위기가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불협화음조차 실수가 아니라 ‘재즈적 허용’으로 살아난다.

유충식 재즈밴드가 인(因)이라면, 공간과 공기, 바람, 그리고 관객은 연(緣)이다. 인과 연이 만나는 순간, 익숙한 소리를 벗어난 새로운 울림이 태어난다. 어둠 속 틈으로 스며드는 한줄기 빛처럼, 잔잔하지만 깊은 리듬과 멜로디가 다시 살아난다.

형식과 틀의 긴장에서 벗어난 재즈는, 전복의 순간을 지나 어느새 평온의 흐름으로 스며든다.

한편, 드럼의 김지훈은 격렬함 속에서도 재즈 특유의 부드러운 강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베이스의 손승우는 느긋한 리듬으로 중심을 단단히 붙든다. 그 위에 유충식의 섬세한 피아노가 스며들며, 무대는 마치 살아 숨 쉬듯, 봄날 폭죽처럼 터지는 꽃의 화사함으로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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