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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호스 나인] 휘발되지 않는 웃음, 그리고 두 ‘명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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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호스 나인’이 11월 관객을 찾는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와일드 호스 나인’이 11월 관객을 찾는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1973년, CIA 베테랑 요원 크리스(존 말코비치 분)와 리(샘 록웰 분)는 임무 수행을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이스터섬으로 향한다.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서 비밀 작전을 함께하며 각별한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 은퇴를 앞둔 크리스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사이, 리는 상관 MJ(스티브 부세미 분)로부터 크리스를 감시하라는 비밀스러운 지시를 받는다.

두 사람의 이스터섬행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암에 걸린 크리스는 강한 진통제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고, 자신의 마지막을 오랜 동료이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구 리에게 부탁한다. 그렇게 죽음을 앞둔 크리스와 그의 곁을 지키기로 한 리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

영화 ‘와일드 호스 나인’은 1973년 칠레 쿠데타를 앞두고 이스터섬으로 파견된 CIA 요원 크리스와 리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과거의 비밀과 정체불명의 음모에 휘말리게 되는 미스터리 첩보 스릴러다. ‘킬러들의 도시’ ‘쓰리 빌보드’ ‘이니셰린의 밴시’ 등을 선보인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크리스 역의 존 말코비치는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소재는 무겁지만 좀처럼 힘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죽음을 비장하게 포장하거나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크리스와 리의 여정을 차분하게 따라가며 삶과 죽음, 선택과 후회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놓는다. 

명연기를 펼친 존 말코비치(왼쪽 위 사진 왼쪽)와 샘 록 웰(왼쪽 위 사진 오른쪽).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명연기를 펼친 존 말코비치(왼쪽 위 사진 왼쪽)와 샘 록 웰(왼쪽 위 사진 오른쪽).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 중심에는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지나온 삶을 되짚는 크리스가 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수많은 비밀 작전을 수행해 온 그는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죽음에 관여했고, 마지막까지 지난 선택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영화는 그의 과거를 통해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삶의 끝에서 결국 무엇이 남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크리스가 능청스럽게 늘어놓는 농담과 거짓말, 리와 주고받는 거침없는 대화가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고 그 웃음이 가볍게 휘발되지는 않는다. 크리스의 농담과 엉뚱한 행동에는 그가 견뎌온 삶의 방식과 시간이 녹아 있어 웃음 이상의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크리스와 리의 관계성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다. 가족과도 단절된 채 홀로 남은 크리스에게 리는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리는 때로 의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결국 크리스의 믿음에 응답하고 그의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다. 마지막 순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짧은 손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진심이 오롯이 전해져 먹먹함을 안긴다.

배우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존 말코비치의 얼굴에는 크리스가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장난기 가득 농담을 던지다가도 문득 드러나는 공허한 눈빛, 죽음을 앞둔 불안과 두려움, 그 사이로 스치는 처연함까지 섬세하게 오간다. 샘 록웰 역시 존 말코비치와 능청스러운 호흡으로 유쾌함을 살리는 동시에 오랜 친구를 향한 마음과 비밀스러운 임무 사이에서 흔들리는 리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스터섬의 이국적이고 고요한 풍광도 두 사람의 여정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드넓은 초원과 태평양, 거대한 모아이 석상 등이 아름다운 볼거리를 넘어 두 사람의 동행에 특별한 정서를 더한다. 러닝타임 116분, 오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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