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아무도 말뿐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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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뇌르마르크 / 자음과모음 제공-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열망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략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디바이스를 고려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은 가치를 생성해낼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2014년 노키아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엘롭은 실질적 정보가 거의 없는 장문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글만 읽으면 도대체 ‘더 많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고, ‘열망’ ‘전략’ ‘생산성’ ‘가치’와 같은 요란한 말들만 눈에 띈다는 점에서다. 알맹이는 감추고, 겉만 그럴싸한 내용의 글인 셈이다. 그런 화려한 수사 속에 1만2천500명을 감축할 계획이라는 내용은 스쳐 지나갈 듯이 무심하게만 언급돼 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세계 휴대전화 업계를 평정했던 노키아는 이런 화려한 말 잔치 속에 사라져갔다.


노키아폰 / EPA=연합뉴스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신간 ‘진짜 노동’에서 노키아 사례를 들며 “불분명하고 의미 없는 말이 만연하게 되면 그 조직의 핵심 업무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고, 조직은 실질적인 일을 하는 대신 말하는 쪽으로 초점을 옮기게 된다”고 강조한다.

뇌르마르크는 2년 전 국내 출간돼 주목받은 ‘가짜 노동’의 저자다. 그가 말한 가짜 노동이란 바쁘고 무의미하게 시간만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 노동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노동은 아닌 업무, 아무 결과도 내지 못하는 작업, 계획·제시·착수·실행되기 위해 사전에 이뤄지는 노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짜 노동’의 후속작 ‘진짜 노동’은 조직 내에서 가짜 노동을 없애고 진짜로 일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회사 생활 / 연합뉴스

우선 없애야 할 것이 ‘헛소리’ 문화다. 저자가 인용한 프린스턴대 해리 G.프랑크푸르트 교수에 따르면 헛소리는 거짓말보다 나쁘다. 거짓말쟁이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에 거짓말을 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헛소리꾼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를뿐더러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호의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뿐”이다. 1만2천500명의 해고를 앞두고 한 페이지 반을 헛소리로 채운 노키아 CEO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헛소리가 실속은 없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좋아 보이는 조직 문화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이 “가짜 노동의 본질”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무도 말뿐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노동을 위해선) 솔직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조언한다.


회사 사무실 / 연합뉴스 TV 제공

아울러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습관을 기르라고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이 매일 무엇을 하는지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전제한다.

‘변화 증후군’도 피하라고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조직 상부는 ‘변혁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직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죽은 것처럼 보이는 금붕어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봉지를 마구 흔들다가 결국 살아 있는 다른 세 마리의 금붕어를 죽이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차라리 조직원들이 업무에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지, 또 그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밖에도 ‘진짜 노동’을 하기 위해선 자기 일에 한계를 설정하고, 회의와 이메일 사용을 줄이며 성과 지표에 매몰되지 말라고 촉구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자음과모음. 손화수 옮김.468쪽.


책 표지 이미지 / 자음과모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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