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가상자산 시장의 길었던 겨울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와 반감기로 투자심리가 회복되면서 ‘불장’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코인마켓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VASP)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다수 사업자가 자격 갱신 주기가 돌아오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심사가 훨씬 깐깐해졌기 때문이다. 국회 또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요건에 대주주 적격성과 특금법 위반 위험성을 추가하는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반기 24개 사업자 갱신 앞둬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가상자산사업자는 총 37개사다. 이중 두나무를 시작으로 내년 10월부터 12월 말까지 가상자산사업자 24개사가 갱신신고를 앞두고 있다. 가상자산 코다(KODA), 케이닥, 오하이월렛을 제외하면 모두 가상자산거래소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신고 유효기간은 최초 신고일로부터 3년이다. 대부분의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일은 신고제가 최초로 도입됐던 2021년 말에 몰려있다. 2022년에는 페이코인, 오아시스거래소, 큐비트, 카르도 등 12개사가 신고수리증을 받았으나, 올해는 인피닛블록만이 신고수리를 완료했다.
현행 가상자산사업자는 형식상 신고제지만 사실상 허가제에 가깝다. 원칙적으로는 형식적 요건을 갖추면 갱신하는 게 맞지만, 금융당국의 심사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바이낸스를 대주주로 둔 고팍스의 변경신고를 명확한 이유 없이 수개월간 지연한 것이 그 예다.
앞으로 당국의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심사는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로부터 엄연히 신고수리증을 발급받았던 델리오가 고객자산 출금정지 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델리오는 예치·운용업이 아닌 보관·관리업자로 신고했지만, 규제당국의 감시가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신고 불수리’ 요건 늘어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신고 심사와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기존 사업자에 대해 신고심사 과정에서 자금세탁 위험이나 이용자 보호에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고, 문제 있는 사업자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대주주 심사를 강화하겠다고도 밝혔다.
현행 특금법에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시 대주주 요건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불수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포함된 특금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9월 대표발의한 특금법 개정안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시 심사 범위를 기존 대표자와 임원에서 실질적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대주주로 확대했다.
또한 윤 의원이 지난 22일 대표발의한 또다른 특금법 개정안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 불수리 대상자 요건에 △가상자산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위반할 우려가 상당한 자 △신청서나 첨부서류에 거짓이 있는 자 △건전하고 투명한 금융거래질서 확립,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추가했다. 특금법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것만으로도 가상자산사업자 불수리 요건에 해당되는 셈이다.
어렵게 획득한 VASP 포기 움직임도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갱신이 훨씬 어려워진 가운데 일부 코인마켓거래소는 벌써부터 갱신을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실질적으로 거래대금이 없다시피 한 코인 거래소들이다.
기존에는 실명계좌를 발급받아 원화거래소로의 전환을 노리는 곳들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한빗코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원화거래 전환 변경신고 ‘불수리’ 통지를 받자, 실질적으로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사업을 중단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코인마켓거래소로 꼽혔던 캐셔레스트와 코인빗은 올해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기는 지났고, 원화거래 전환이 어렵다면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돈이 든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예치·운용업 금지…스테이킹도 직접 참여해야
올해 델리오, 하루인베스트 사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가상자산 예치·운용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내년 7월21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법 7조 2항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가 사용자로부터 위탁받은 가상자산을 동종·동량으로 실질 보유하도록 규정해, 이용자 자산을 외부에 맡기는 일 자체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등 주요 가상자산거래소가 운영 중인 ‘스테이킹’ 서비스도 제3자에게 위임하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스테이킹은 이용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맡겨 운영·검증 작업에 활용하도록 하고, 보상으로 가상자산을 받는 서비스다. 개인 투자자가 직접 스테이킹에 참여하기 어렵다보니 거래소의 스테이킹 서비스를 찾는 경우가 많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스테이킹 서비스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가상자산을 보유해야만 한다.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 중인 국내 거래소들은 모두 위탁받은 가상자산을 외부에 이동하지 않고 있다. 단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노드를 모두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업비트뿐이고, 타 거래소는 운영 권한을 일부 위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