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연 “정치와 과학간 관계 재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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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상임대표 안현실 서울대 객원교수)이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의 시대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정치와 과학간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실연은 19일 발표한 과학의 날 성명서에서 “각국은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과학기술에 관한한 초당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은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정치적 공방거리가 되고 있다”면서 “오로지 여·야간 정쟁과 대립 속에 정권교체 때마다 ‘앞 정권 정책 뒤집기’만 반복적으로 자행되고 있을 뿐”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과학의 날을 처음 제정했던 1960년대에는 과학의 날이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국민 모두의 잔치였으나, 외형적으로 급성장한 2020년대의 과학기술은 정치의 무지 앞에서 주저앉을 판”이라면서 “연이은 정부의 자해행위에 과학계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거두어버린 상황이며, 급기야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과실연은 이에 따라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시대적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인식”하고 “정치와 과학간의 관계 재정립”을 통해 과학의 날은 “온 국민이 과학기술로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국민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실연 로고 [사진=과실연]

이하는 과실연 성명서 전문 ‘1968년 과학의 날 vs. 2024년 과학의 날”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온 국민 축제의 장이 돼야 할 과학의 날이 올해는 우울하기 그지 없다. 사상 초유의 과학기술예산 일괄 감축의 여파로 연구현장은 혼돈과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사기가 떨어진 과학기술 인재는 가던 길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세계는 안보와 경제를 앞세운 강대국의 국익 우선주의로 글로벌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국은 국가의 생존 차원에서 과학기술에 관한한 초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불행히도 지금의 한국은 과학기술정책이 방향성을 잃어버린채 정치적 공방거리가 되고 있다. 여‧야가 과학기술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취급하는 형국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정부가 과학기술처 설치일인 4월 21일을 과학의날로 정한 것은 1968년이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민간단체인 발명학회 주도로 찰스 로버트 다윈의 서거일인 4월 19일로 지정한 ‘과학데이’의 부활이었다. 1960년대 당시 한국은 과학기술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세계 최빈국으로부터의 탈출 몸부림은 경제발전에 대한 열망으로, 또 그 열망은 과학기술의 기반 투자로 이어졌다.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성이 뚜렷했다.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와 교육열은 세계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았다. 당시 과학의 날은 ◇ 국민의 과학기술 이해 증진 ◇ 우수 인력의 과학기술 유인 ◇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 강화를 상징하는 날이었다. 대통령의 잔치도, 과학계의 잔치도 아닌,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국민 모두의 잔치였다. 한강의 기적은 이렇게 탄생했다.

2024년 과학의 날,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 한국은 선진국 추격에 성공했지만, 이후 국가 발전의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여‧야간 정쟁과 대립 속에 정권교체 때마다 ‘앞 정권 정책 뒤집기’만 반복적으로 자행되고 있을 뿐이다. 1960년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외형적으로 급성장한 2020년대의 과학기술이 정치의 무지 앞에서 주저앉을 판이다. 한국은 세계 5대 연구개발투자 국가이지만, 모방‧추격에서 창조‧선도로 가야 한다는 구호만 무성할 뿐, 독자적인 선진 모형을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 전(前)정부의 탈(脫)원전, 현(現)정부의 과학기술예산 일괄 감축 등 연이은 정부의 자해행위에 과학계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거두어버린 상황이다. 급기야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1968년 과학의 날과 2024년 과학의 날. 반세기가 훌쩍 지나간 사이 한국은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방식을 근간으로 한 바른과학기술 사회를 얼마나 실현한 것인가? 모두가 자문해 봐야 할 질문이다. 총선 때마다 국회에 입성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법조계가 판을 치는 국회에서 정치논리가 과학논리를 압도하고, 숫자와 데이터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이 밀려나는 현실을 미래세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22대 국회는 과연 다를 것인가?

정부도 정치도 과학기술 리터러시가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되지 않으면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은 요원할 것이다. 1968년 과학의 날이 던진 ◇ 국민의 과학기술이해 증진 ◇ 우수 인력의 과학기술 유인 ◇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 강화는 2024년 과학의 날에도 여전히 무거운 숙제로 남아있다.

첫째,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시대적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모방‧추격의 시대 과학기술의 의미와 창조‧선도의 시대, 나아가 인공지능(AI)의 시대 과학기술의 의미가 같을 수 없다. 시대를 향도하는 과학기술의 의미 재해석과 과학문화의 선진화야말로 연구개발투자의 양과 질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미래 세대가 과학기술에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핵심동력이다.

둘째, 정치와 과학간 관계 재정립이다. 1960년대는 국민의 과학 인식 제고가 시급했지만, 2020년대는 국민 보다 못한 정치의 과학 인식 제고가 급선무라는 목소리가 강하다. 역진화를 해온 정치에 대한 경고다.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모두를 위한 과학기술’의 추구와 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 임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위한 과학의 날인지를 지금이라도 분명히 해야 한다. 과학의 날에 대통령이 오는지, 안 오는지로 일희일비하는 과학계의 모습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과학의 날은 대통령의 날이 아니다. 장‧차관의 날도 아니다. 과학계의 날도 아니다. 과학의 날은 온 국민이 과학기술로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국민 축제의 날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 과학기술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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