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패밀리컴퓨터 4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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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컴퓨터가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 닌텐도
패밀리컴퓨터가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 닌텐도

게임을 기념하는 날을 정한다면 언제가 좋을까?

플레이스테이션이 탄생한 12월 3일? 그보다는 패밀리컴퓨터가 탄생한 7월 15일이 더 좋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1983년 7월 15일… 트럼프와 완구를 만들던 닌텐도는 자사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컴퓨터를 출시했다.

패밀리컴퓨터는 게임 산업의 기틀을 만든 게임기다. 패밀리컴퓨터 전에 태어난 아타리 등은 모두 실패했고 심지어 아타리는 아타리쇼크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미국 게임기 시장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하지만 닌텐도는 당시 오락실 게임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의 게임을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돌고 패밀리컴퓨터를 탄생시켰다.

당시 닌텐도는 오락실용으로 ‘동키콩’과 ‘동키콩 주니어’, ‘뽀빠이’ 등의 여러 아케이드 게임을 출시하면서 인기를 얻었는데, 이 게임들이 모두 패밀리컴퓨터로 동시출시됐다. 패밀리컴퓨터는 14,800엔에 출시됐지만 실제 성능은 25,000엔 이상하는 게임기보다 더 강력할 정도였다. 이는 하드웨어는 적자를 보고 소프트웨어로 손실을 채우는 현재 게임기에서 사용하는 정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패밀리컴퓨터는 메인 CPU와 그래픽 프로세서를 별도로 사용했고 램도 동시대 게임기보다 더 많았다. 그래픽 처리 성능 역시 우수했다. 당시 아타리 2600이 일본에서 24800엔이었고, 세가 역시 7월 15일에 출시한 세가 최초의 게임기 SG-1000은 15000엔에 출시됐다. 하지만 SG-1000은 1비트 스크롤이 불가능한 등 성능면에서 패밀리컴퓨터에 크게 뒤쳐졌고 결국 16만대 정도를 판매하면서 실패했다.

반면 패밀리컴퓨터는 오락실 게임을 거의 비슷하게 가정에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우수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동키콩’ 등으로 대표되는 인기 게임들을 꾸준하게 출시하며 성공을 거뒀다. 패밀리컴퓨터가 인기를 얻자 서드파티로 참가하는 게임회사가 계속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1호 서드파트인 허드슨과 2호 서드파티 남코는 큰 성공을 거뒀다.

허드슨의 쿠도 사장은 백화점에서 패밀리컴퓨터용 게임을 보고, PC라면 20만엔이 넘는 가격에서나 가능할 게임이 14800엔의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PC 게임에서 패밀리컴퓨터용 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허드슨은 닌텐도와 1호 서드파티 계약을 맺고 ‘로드런너’와 ‘너츠 앤 밀크’를출시하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일본의 PC 게임 시장도 1만장이면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했으나 패밀리컴퓨터용 ‘로드런너’는 130만장 이상이 판매됐고 ‘너츠 앤 밀크’도 30만장 이상을 판매했다.

이렇게 서드파티들이 큰 성공을 거두자 패밀리컴퓨터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서드파티는 계속 증가했고 이와 함께 패밀리컴퓨터는 사실상 일본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평정하게 됐다.

당시 닌텐도가 탄생시킨 서드파티 관련 비즈니스 모델은 지금 게임기나 각종 ESD(스팀 등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 등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사용될 정도로 대표적인 모델이 됐다. 또한 닌텐도는 패밀리컴퓨터용으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동키콩’, ‘젤다의 전설’, ‘메트로이드’, ‘파이어 엠블렘, ‘별의 커비’ 등 지금도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IP들을 모두 탄생시켰다. 그리고 키보드와 모뎀 등을 통해 가정용 PC로서, 가정용 온라인 단말기 역할까지 도전하며 게임기를 뛰어넘는 멀티미디어 기기로의 도전까지 시도했다. 물론 결과는 작은 램과 여러 문제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패밀리컴퓨터는 1985년 미국에서 출시됐는데, 당시 미국의 비디오 게임은 아타리쇼크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소매점이 비디오 게임 판매를 거절할 정도였으나 닌텐도는 미국에서도 성공이 가장 까다롭다는 뉴욕부터 공략하여 조금씩 판매량을 증가시켰다. 소매점에게 굴욕적인 수준의 계약을 할 정도로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은 박살나 있었고 닌텐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패밀리컴퓨터라는 이름 대신 NES(Nintendo Enetertainment System)으로 명칭을 바꿨고 학습이 가능한 엔터테인먼트 기기처럼 보이기 위해 로봇 주변기기인 R.O.B.와 BASIC 프로그램 언어를 내세우는 등 비디오 게임의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닌텐도의 노력에 힘입어 NES는 미국에서도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도 조금씩 성장세를 기록하게 됐다. 패밀리컴퓨터는 국내에서는 현대전자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1989년부터 국내에 정식 수입되기도 했다.

이렇게 패밀리컴퓨터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의 여명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의 게임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켰다. 또한 게임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 마리오’나 ‘젤다의 전설’ 등 놀라운 IP들을 탄생시키며 지금처럼 게임업계가 큰 산업으로 성장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그래서 만약 게임을 기념하는 날이 지정된다면 7월 15일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게임계에 영원한 전설로 남을 패밀리컴퓨터. 지금의 40-50대 게이머라면 집에서, 혹은 친구의 집에서 즐기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친척, 친구와 함께 즐기던 당시의 패밀리컴퓨터에는 게임 그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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