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카레 먹고 온천으로 마무리, 실패 없는 대만 화롄 ‘오감 만족’ 여행 코스
대만 화롄은 타이루거 협곡으로 유명하지만 협곡 하나만 보고 떠나기에는 아까운 도시다.
원주민 문화관 (花蓮縣原住民文化館)

오전에 찾을 장소는 화롄현 원주민 문화관(花蓮縣原住民文化館)이다. 화롄현은 대만에서 원주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아미스족·타이루거족 등 여러 부족이 수천 년 전부터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다.
문화관은 유물을 늘어놓는 전시장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역사와 예술, 정체성을 보존하고 알리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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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원주민 전통 가옥 양식인 판자 지붕(Slate Roof)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독특한 외형이 방문자를 맞이하고, 1층에는 원주민들의 수공예품·의복·생활 도구를 상설 전시하는 공간과 공연장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원주민 전통 가무 공연은 역동적인 춤과 노래로 그들의 생명력을 직접 전달하며, 공연 후에는 퀴즈를 통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2층 갤러리에서는 원주민 예술가들의 현대 미술 전시가 수시로 열린다. 입장료 없이 수준 높은 전시와 도슨트 해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파인 가든 (Pine Garden, 松園別館)

미룬산 자락, 화롄시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파인 가든(松園別館)은 1942년경 건립된 해군 사령부 사무실 겸 고위 장교 휴양소였다. 화롄 항구와 태평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지금은 경관이 아름다운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약 100여 그루의 오래된 류큐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파인 가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짙은 녹음과 고즈넉한 건축물이 어우러진 이곳은 화롄에서 가장 평온한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본관은 서양식 건축 양식에 동양적인 기와지붕을 얹은 독특한 구조로 설계됐고 2층 전시실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와 시 낭송회, 강연 등이 열린다. 정원 곳곳에 보존된 방공호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가늠하게 한다. 습지 식물과 반얀트리가 어우러진 생태 연못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0년 ‘역사 경관 공원’으로 지정된 후 대만 100대 역사 명소 중 하나로 등록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은 공간이다. 군사 시설로서의 권위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예술가가 머무는 공간이 됐다.
카뚜어시 카레 (咖多喜咖哩)

파인 가든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점심 시간이다. 화롄 시내로 내려와 카뚜어시 카레(咖多喜咖哩, Kāduōxǐ Gālí)를 찾아가자. 화롄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수제 카레로 정평이 난 곳이다.
카뚜어시 카레는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식당과 다르다. 신선한 채소와 고기, 직접 배합한 향신료를 오랫동안 끓여내어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대만 여행 중 향신료가 강한 음식에 지쳤을 때, 이곳의 카레는 한국인 입맛과도 잘 맞으면서 깊은 풍미를 내 실패 없는 한 끼를 보장한다. 식당 외관과 내부 모두 목재 위주로 꾸며져 있어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아늑함이 있다.
추천하는 메뉴는 소고기 카레와 치킨 가라아게 카레다. 소고기 카레는 큼직하게 썬 소고기가 입안에서 녹을 만큼 부드럽게 조리되고, 카레 소스는 진하고 묵직해 밥과의 조화가 좋다. 튀김을 즐긴다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풍부한 치킨 가라아게 토핑 메뉴를 권한다. 밥 위에 올라간 반숙 달걀 프라이를 톡 터뜨려 카레와 함께 비벼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 된다.
장군부 1936 (將軍府 1936, Jiang Jun Fu 1936)

점심을 마친 후에는 메이룬강 유역으로 이동한다. 장군부 1936(將軍府 1936)은 과거 고위 관료들의 관사로 쓰이던 목조 건물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약 100년 세월을 버텨온 이 구역은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쳐 2024년 4월 정식으로 재개장했다.
거대한 뿌리로 담장을 감아 안은 반얀트리와 정갈한 목조 건물이 어우러진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포토존이다.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단지 안에는 화롄 신선 식재료를 활용한 오마카세 스타일 레스토랑, 대만 전통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티 하우스, 화롄 지역 특색을 담은 수공예품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오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다.
깔끔한 미감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공간들이 곳곳에 있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 좋다. 밤이 되면 건물마다 은은한 조명이 켜지며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메이룬강의 강바람을 받으며 산책하기에도 좋다.
보티나리 정품커피 (波提娜麗精品咖啡, Portinari Coffee)

장군부 1936을 천천히 둘러본 후에는 조용한 골목 안쪽에 자리한 보티나리 정품커피(波提娜麗精品咖啡)로 향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 포르티나리에서 이름을 따온 이 카페는 내부 전체가 작은 갤러리 혹은 고전적인 서재처럼 꾸며져 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세심하게 배치된 소품들,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이 오후의 피로를 녹여주기에 충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원두 선별부터 로스팅, 추출 방식까지 모든 과정을 정교하게 관리하는 곳이다. 대표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로, 보티나리만의 시그니처 블렌드나 대만 현지에서 재배한 고품질 원두를 선택해볼 것을 권한다.
대만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커피 생산지 중 하나다. 이곳에서 마시는 대만산 원두는 깔끔한 산미와 깊은 단맛의 균형이 인상적이다. 진한 커피를 선호한다면 융 드립(Flannel Drip) 방식을 요청해보자. 종이 필터보다 오일 성분을 더 많이 살려내어 묵직하고 부드러운 바디감을 느낄 수 있다. 커피와 함께 수제 치즈케이크를 곁들이면 더 좋다. 과하지 않은 단맛과 진한 치즈 풍미가 커피의 쌉쌀한 맛을 잘 중화시킨다.
안통 온천 호텔 (An Tong Hot Spring Hotel, 安通溫泉飯店)

마지막은 안통 온천 호텔(安通溫泉飯店)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안통 계곡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화롄 8경 중 하나인 ‘안통탁난(安通濯暖)’의 근원지이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온천 휴양지다.
해발이 높은 산자락에 자리해 사방이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호텔 바로 앞으로 맑은 안통강이 흐른다. 온천수는 약알칼리성 염화물 황산염천으로, 섭취 시 소화기 질환에 도움을 주고 입욕 시 피부병이나 신경통 완화에 효과적이라 알려져 ‘미인탕’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호텔 내부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된 본관 객실과 함께 10종 이상의 온도를 갖춘 대규모 노천 스파, 탁 트인 산세를 바라보며 프라이빗하게 이용 가능한 옥상 탕옥, 수영복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남녀 분리형 실내 대중탕까지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온천 티켓을 구입하면 이용가능하다.
글= 권효정 여행+ 기자, 사진=공식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