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부자들도 인정했다”… 사우디 첫 전기차가 택한 ‘국산 부품’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원유·인프라 동맹’의 틀을 깨고 전기차·인공지능(AI)·방위산업·헬스케어 등 첨단산업 전반으로 협력 범위를 대폭 확장한다.
‘2026 한-사우디 비즈니스 투자 포럼’ 개요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6 한-사우디 비즈니스 투자 포럼’에는 양국 주요 기업인 및 기관 관계자 약 250명이 참석했다. 이번 포럼은 한국경제인협회와 사우디 국부펀드 PIF(Public Investment Fund)가 공동 주최·주관했다.
사우디 측에서는 사우디 최초 토종 전기차 브랜드 시어(Ceer), 최대 통신사 STC(Saudi Telecom Company), 국영 방산기업 SAMI(Saudi Arabian Military Industries) 등 핵심 기업 약 20개사가 방한했다. 한국 측에서는 사우디와 협력 중이거나 신규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 약 90개사가 참석해, 총 110여 개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포럼은 ▲첨단산업(전기차·AI·방산·첨단 제조) ▲통신·미디어·헬스케어 ▲유틸리티·자원·물류 ▲특구개발·건설(스마트시티·산업특구) 등 4개 트랙으로 구성됐으며, 기업별 투자 제안 피칭(pitching) 세션과 1대1 사업 상담회가 병행 진행됐다.
사우디 ‘비전 2030’이 만든 기회의 지형도
이번 포럼의 배경에는 사우디의 국가 대전환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이 있다. 비전 2030은 석유 의존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 첨단 제조·디지털·관광·헬스케어 등 산업을 다각화하는 국가전략으로, 국부펀드 PIF를 중심으로 전기차·AI·스마트시티(NEOM·New Murabba) 등 이른바 ‘기가프로젝트’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사우디는 한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이자 중동 지역 내 최대 교역국이다. 기존의 인프라·플랜트·정유화학 중심 협력만으로는 비전 2030이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과 첨단기술 축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이번 서울 포럼은 협력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공식 플랫폼으로 기획됐다.
시어(Ceer) 전기차, 한국 공급망과 이미 연결됐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우디 기업은 단연 시어(Ceer)다. 2022년 11월 사우디 국부펀드 PIF와 대만 폭스콘(Foxconn)의 합작으로 출범한 시어는 사우디 최초의 토종 전기차 브랜드다. 지난 9월 21일에는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 내 ‘Ceer 제조복합단지(CMC)’에서 플래그십 전기 세단·SUV 라인업 ‘엑소봇(EXOBOT)’을 공개했으며, 첫 출고(딜리버리)는 2027년 3월로 예정돼 있다.
특히 엑소봇의 구동 모터 공급사에 한국의 현대트랜시스(Hyundai Transys)가 포함됐다는 점은 이번 포럼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한다. 시어 프로젝트는 이미 한국 부품·기술과 연결된 공급망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번 포럼에서는 추가적인 합작공장·배터리 공급 계약·차량용 소프트웨어(IVI·ADAS) 협력까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AI·클라우드·방산·헬스케어, 협력의 3대 축
포럼에 참가한 사우디 최대 통신사 STC는 5G·데이터센터·클라우드 등 디지털 인프라 분야의 핵심 투자자다. 한국의 통신장비·클라우드·AI 서비스 기업에는 공동 데이터센터 구축, AI 모델 현지화, OTT·콘텐츠 플랫폼 제휴 등의 기회가 열린다. 특히 GCC FTA가 발효될 경우 사우디를 거점으로 걸프 전역에 디지털 서비스를 확장하는 구조적 이점도 생긴다.
방산 분야에서는 사우디 국영 방산기업 SAMI가 핵심 파트너다. SAMI는 미사일·지상장비·해군·공군 시스템의 국산화와 공동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방산기업(K-방산)은 자주포·전차·장갑차·함정·미사일 등에서 이미 다수 국가와 기술·생산 협력 사례를 축적한 상태로, SAMI와의 공동 생산·조립공장 설립 및 NEOM·특구 내 보안·감시 시스템 구축 참여가 유력한 협력 모델로 거론된다.
헬스케어·바이오 분야에서도 협력 잠재력이 크다. 사우디는 리야드 글로벌 메디컬 바이오테크 서밋(RGMBS) 등을 통해 의료·바이오 스타트업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한국 바이오 기업은 중동·북아프리카(MENA) 시장 진출을 위해 임상·병원 운영·메디컬 IT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 중이다. 이번 포럼의 헬스케어 트랙은 양국 기업 간 구체 투자·조인트벤처를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성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축사에서 “한국과 사우디가 구축해 온 견고한 신뢰는 지정학적 갈등과 AI 혁명, 보호무역이라는 복합적인 도전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확실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AI 전환을 기회로 삼아 첨단산업 협력을 가속하는 한편, 한-걸프협력회의(GCC)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발효 등을 통해 제도적 토대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