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172m에 자리 잡은 ‘정령치습지’…3000년 깊은 잠에서 깨어나다 [이생관]

13

기원전 1690년에 생성된 고산습지

서어나무숲 간직한 운봉백두대간

다양한 생물서식 등 생태가치 높아

해발 1172m 정령치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모습. 시원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해발 1172m 정령치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모습. 시원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 이달의 생태관광지(이생관)는 환경부에서 자연환경의 특별함을 직접 체험해 자연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자 2024년 3월부터 매달 한 곳을 선정・소개하고 있다. 전국 생태관광 지역 중 해당 월에 맞는 특색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지역 관광자원 연계 및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한다. 데일리안은 전국에 있는 생태자원 현장을 직접 찾아가 생태적 가치와 보존, 그리고 관광이 공존하는 ‘이달의 생태관광’을 직접 조명하고자 이 시리즈를 준비했다. 초보여행자, 가족여행자 눈높이에서 바라본 현장감 있는 시리즈로 풀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난이도 =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

접근성 = 주차장이 있어 차량으로 갈 수 있어요(⭐︎)

볼거리 = 정령치에서 펼쳐진 백두대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경 그 차체. 서어나무숲을 거닐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진다(⭐︎⭐︎⭐︎⭐︎⭐︎).

전북 남원 정령치습지는 기원전 1690년에 생성된 고산습지다. 희귀식물인 꽃창포와 각종 수생생물을 비롯해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반달가슴곰, Ⅱ급인 삵 등이 서식하고 있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운봉백두대간은 해발고도 450~550m 범위의 지리산국립공원에 위치한 고원이다. 이곳에 있는 서어나무숲은 2000년 열린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수상했다.

인근 삼산마을 노송군락지(용솔공원)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됐을 만큼 뛰어난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또 고유식물종인 붉은병꽃나무를 포함해 모두 220종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남원에서 올라오면 정령치 터널을 지나 표지석을 볼 수 있다. 표지석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남원에서 올라오면 정령치 터널을 지나 표지석을 볼 수 있다. 표지석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접근성 좋아진 정령치…보물 ‘마애불상군’까지 한 눈에

정령치습지는 해발 1172m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내 위치하고 있음에도 화엄사, 노고단 등 비교적 유명한 지역보다 덜 알려진 곳이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산악인이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령치가 다소 볼 거리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정령치습지’는 상당히 작다. 한 눈에 볼 수 있는 규모다. 4월 이달의 생태관광지인 ‘고창운곡습지’와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되는 작은 습지다. 그럼에도 이 습지는 생태적 보존 가치가 크다. 고산습지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다른 습지들과 비교불가한 매력이 있다. 고산습지로 한정한다면 꽤 큰 규모(3271㎡)다.

최근 국립공원공단에서 주차장과 편의시설 등을 마련해 접근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정령치 주차장에서 정령치습지까지는 왕복 30~40분이면 충분하다. 산행 초보자나 5세 이상 자녀를 둔 가족들도 쉽게 산책이 가능한 수준이다.

정령치습지는 고산습지로 보존가치가 높다. 이 곳에 자생하는 동식물들 역시 생태적으로 보존이 필요하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정령치습지는 고산습지로 보존가치가 높다. 이 곳에 자생하는 동식물들 역시 생태적으로 보존이 필요하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5월 중순이면 철쭉터널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철쭉터널을 지나면 잣나무 숲길을 만나는데, 이 길은 국립공원공단이 뽑은 ‘국립공원 걷기 좋은 숲길 50선’ 중 하나다.

경현철 남원시 지리산생태관광지역협의체 사무국장은 “정령치습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위치한 고산습지다”라며 “산림청 지정 희귀 식물 꽃창포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물 삵이 서식하는 지리산 백두대간 생태계의 보고”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보물 제1123호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이 절벽에 12불상이 새겨져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우리나라 보물 제1123호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이 절벽에 12불상이 새겨져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따르면 정령치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데서 지명이 유래됐다. 또 이곳은 신라시대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고 한다.


산정에는 옛날의 역사를 실증이라고 하듯 지금도 군데 군데 유적이 남아 있어 당시를 상기케 한다. 산 밑을 내려다 보면 발 아래 보일 듯 말듯 굽어 보이는 절경은 장엄하기 그지없고 안개가 낀날에는 선경이 연상되며 자신이 신선이 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령치습지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바로 보물 제1123호 ‘마애불상군’이다. 마애불상군은 정령치습지 위에 위치한 개령암지 절터에서 발견됐다. 이 절터 절벽에 1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가장 큰 본존불은 4m나 된다. 큰 얼굴, 추상화된 이목구비, 장대한 체구와 간략한 옷주름에서 고려시대 거불의 특징을 볼 수 있다.

12불상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보전된 불상 1의 모습. 이목구비와 몸의 형태까지 뚜렷한 윤곽을 볼 수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12불상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보전된 불상 1의 모습. 이목구비와 몸의 형태까지 뚜렷한 윤곽을 볼 수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조용한 사색의 공간…운봉백두대간 용솔군락지와 서어나무숲

정령치습지를 둘러보고 남원시 방향으로 내려오면 운봉백두대간을 만난다. 도로 하나를 두고 형성된 삼산마을과 행정마을은 느릿하게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삼산마을 운봉소공원에서 시작하는 마을숲은 아직까지 붙여진 이름이 없다. 남원시 지리산생태관광지역협의체에서는 오래된 소나무가 기형적 자생을 한다는 의미에서 ‘용솔공원’이라는 이름을 검토 중이다.

경현철 사무국장이 삼산마을 소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소나무는 길게 누워서 자라 마치 용이 비상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경현철 사무국장이 삼산마을 소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소나무는 길게 누워서 자라 마치 용이 비상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경 사무국장은 “삼산마을 마을숲은 수백년 수령의 130여 그루 노송이 마을로 드는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숲”이라며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있다. 협의체에서는 용솔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삼산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식됐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밝혔다.

삼산마을에는 예로부터 운봉장의 주력상품으로 팔도에 유명했던 제기(제사용 나무그릇)를 생산하는 운봉목기공방(무형문화제 11호 박수태 목기장 직영)도 있다. 아직도 전통적인 족답기(갈이틀)를 사용해 전통 목기를 제작하고 있다. 전등, 도마, 안마봉 등 생활용품 제작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무형문화제 11호 박수태 목기장이 운영 중인 운봉목기공방. 여전히 전통적인 족답기(갈이틀)를 사용해 전통 목기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니 체험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무형문화제 11호 박수태 목기장이 운영 중인 운봉목기공방. 여전히 전통적인 족답기(갈이틀)를 사용해 전통 목기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니 체험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삼산마을에서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면 고즈넉하게 펼쳐진 벚꽃길을 마주한다. 조용한 벚꽃길의 끝자락에는 행정마을의 명물 ‘서어나무숲’이 기다리고 있다. 서어나무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새상을 받은 국가산림 문화자산이다. 200년생 100여 그루 서어나무가 마을 북쪽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서어나무는 자작나무과 낙엽교목이다. 수피는 회색이고 근육질의 울퉁불퉁한 줄기가 특징이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5~7.5cm의 타원 모양 또는 긴 달걀 모양이다. 끝이 길게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다. 뒷명 맥 위에 털이 있다. 숲이 변해가다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인 극상림을 구성하는 중요한 나무다.

삼산마을에서 행정마을로 들어서면 만나는 벚꽃길. 운봉백두대간의 숨은 명소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삼산마을에서 행정마을로 들어서면 만나는 벚꽃길. 운봉백두대간의 숨은 명소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경 사무국장은 “서어나무 숲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100여 그루의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며 “항상 15℃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철에도 냉방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시원하다”고 말했다.

서어나무 숲은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맑은 피톤치트 공기와 더불어 바람소리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걷는 내내 행복감을 준다.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느끼는 기분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기 힘들다. 이 주변을 지난다면 삼산마을과 행정마을은 꼭 들려보시길.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느끼는 기분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기 힘들다. 이 주변을 지난다면 삼산마을과 행정마을은 꼭 들려보시길.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삼산마을 마을숲과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천천히 걸으면 1시간 내외로 볼 수 있다. 삼산마을에는 소나무 군락지를 감상하기 좋은 카페도 있다.

한편 5월에 남원을 방문하면 지리산 정령치습지와 운봉백두대간 외에도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5월 19일까지), 춘향제(5월 10~16일)와 함께 광한루원, 지리산허브밸리, 김병종시립미술관, 최명희 혼불문학관 등 다양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1
0
+1
0
+1
0
+1
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