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니어 라이프 “너무 행복해 미안할 지경” (인터뷰)

12
도장리 주민 3인, 안영락 이장(왼쪽부터) 강정옥 교수, 한선미 교수 | 사진. 메이킹스
도장리 주민 3인, 안영락 이장(왼쪽부터) 강정옥 교수, 한선미 교수 | 사진. 메이킹스

[데일리임팩트 배선영 기자]  누구나 인생 후반기 여유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치열하게 하루를 버티어 내는 이들 일수록 은퇴 후 한가로이 삶을 즐기는 여유가 고프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년에 여유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요구될 것이고, 삶을 함께 가꿀 주변 사람들과 삶을 즐길 거리들도 필요하다.

노후 설계 전도사로 유명한 강창희 행복 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는 은퇴 후의 삶이 ‘멈춤이 아닌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일거리로 적게라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억대 연금만큼의 효과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사회 활동이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취미 활동이나 사회공헌 활동, 혹은 평생을 현역으로 여전히 수익을 창출하는 노동 활동 등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아무리 치열한 삶에 지쳤다 할지언정 끝까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기 마련이니까.

서울 강남권에서 차로 40분 정도면 도착하게 되는 양평의 한 마을을 찾았다. 배우 이영애를 시작으로 여러 유명 인사들의 전원 주택이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서종면에서 지난 2020년 100% 후주민들로 구성된 작은 마을이 태동했다. 기존의 도장1리와 도장2리에서 분할된 도장3리다. 약 120 가구가 모여 있는 이 작은 마을은 멋진 시니어 라이프를 개척해가는 주민들의 단단한 커뮤니티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도장리 주민 3인, 안영락 이장(왼쪽부터) 강정옥 교수, 한선미 교수 | 사진. 메이킹스
도장리 주민 3인, 안영락 이장(왼쪽부터) 강정옥 교수, 한선미 교수 | 사진. 메이킹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여전히 배움을 나누고, 마을의 굵직한 일들을 도맡아하며 이웃을 돌보고 챙기는 이곳의 주민들은 은퇴 이후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한다. 도장리의 주민 강정옥 씨, 안영락 씨, 한선미 씨(가나다 순, 이하 강,안,한으로 표기)를 만나보았다.

강정옥 씨는 의과대학 교수직을 지내다 정년 퇴직하고 도장리에 집을 지어 정착했다. 식물이 좋아 시골을 찾았다는 그는 양평군친환경농업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 중이다. 안영락 씨는 이 마을의 태동과 함께한 이장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기꺼이 짊어지며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다. 한선미 씨는 독일 베를린에서 오르간을 전공하고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현재는 마을 주민센터의 합창반을 이끌고 있다.

적당한 해방감과 자유로움 속에서 여전히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들과의 대화 중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은, 치열 했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아보겠다며 이곳을 찾았는데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이제는 주변을 둘러보며 챙기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던 대목이다.

도장리 주민 3인, 안영락 이장(왼쪽부터) 강정옥 교수, 한선미 교수 | 사진. 메이킹스
도장리 주민 3인, 안영락 이장(왼쪽부터) 강정옥 교수, 한선미 교수 | 사진. 메이킹스

Q. 세 분 다 도시에서 전원으로 이주를 하시게 되셨는데, 어떻게 오시게 됐는지 궁금하다.

안: 서울에서 30년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막연하게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골로 내려왔다. 은퇴하고 흙 만지고 책 보고 지내고 싶었다. 어쩌다보니 이장까지 하게 돼 바쁘게 지내게 됐지만(웃음).시골생활에 대한 동경만 있지 경험은 없었는데 막상 와보니 여러가지로 만족도가 높다. 참 잘했다 싶다.

한 : 수원에서 살다가 2021년도에 이사를 왔다. 2015년 부터 인문학 특강을 하면서 자주 방문 했었고 지인과도 연결이 된 곳이라 익숙하긴 했다. 그럼에도 (전원생활은) 엄두를 못 내긴 했는데 오빠가 이사를 가면서 그 집으로 들어오게 됐다. 저는 음악을 하고 친구들도 음악을 하니 다들 우려를 하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인들도 내가 만족스럽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좋아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잠들 때까지 좋다. 악기를 언제나 연주해도 되고, 음악 소리도 마음껏 크게 들어도 된다. 텃밭 가꾸는 재미도 좋다.

강 :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고, 40대 부터 은퇴하면 시골에서 정원 가꾸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주도나 서울 경기 인근 지방을 돌아다니며 은퇴 이후 정착하여 살 곳을 보러 다니다가 이곳까지 흘러오게 됐다. 은퇴를 일찍 하고 싶었는데 65세까지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한 교수님도 그러셨는데, 첫 해에는 창문만 열어도 물리적으로 심장 박동이 뛰는 경험을 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의과대학 교수로 살다 65세에 정년 퇴직하고 연고가 없던 양평군 서종면 도장3리에 터를 잡았다는 강정옥 교수, 현재는 친환경농업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 사진. 메이킹스
의과대학 교수로 살다 65세에 정년 퇴직하고 연고가 없던 양평군 서종면 도장3리에 터를 잡았다는 강정옥 교수, 현재는 친환경농업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 사진. 메이킹스

Q. 전원 생활에 만족감이 굉장히 크신 것 같은데, 도장리 분들이 워낙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있다고 들었다. 도장리에서의 삶은 어떤가.

강 : 정원을 가꾸며 사는 것이 내 은퇴 이후의 꿈이었고 지금 그토록 원하던 식물과 더불어 사는 삶이 내게 아주 큰 행복이자 축복이다. 그런 한편, 기대를 하지 않았던 부분은 취향이 비슷한 이웃분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예상치 않은 소득이다. 도장3리는 100% 외지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장님이 정말 헌신적으로 마을을 위해 애쓰신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들도 너무 좋고, 한 교수님 합창 수업도 너무 좋다. 그렇게 함께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너무 행복하게 사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랄까.

65세까지 4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너무 열심히 살았는데 나를 위해 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겠다 하고 여기로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모든 것이 행복하니 이제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 마을 행사나 군에서 하는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Q. 얼마 전 도장 마켓이 성황리에 개최됐다고 들었다. 처음 시도하셨는데, 성공적이었다고.

강 : 그렇다. 4월에 도장 마켓 행사를 진행했다. 이웃들과 재활용, 환경 보호 등을 위해 함께 나누는 행사였는데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반응이 너무 좋아 힘이 났다.

안 : 대성공이었다. 강 교수님이 추진력으로 끌고 나갔다. 이번이 처음인데 두 번째는 훨씬 더 잘할 것이다. 5분만에 완판을 해 나중에 오신 분들께 미안할 정도였다.

Q. 한 교수님의 합창 수업도 반응이 뜨겁다. 수강생도 많고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하다.

한 : 사실 평생 일을 하던 사람들은 뭔가를 하지 않으면 빈 공간을 메꾸고 싶어한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쓸모있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도장3리 이장님의 배려로 급진적으로 진전이 됐다.

삼성에서 근무, 개인사업을 하다 일찌감치 은퇴하고 도장리에 자리를 잡은 안영락 이장은 외지인으로 마을 이장까지 하게 된 시골에선 흔치 않은 사례의 주인공이다 | 사진. 메이킹스
삼성에서 근무, 개인사업을 하다 일찌감치 은퇴하고 도장리에 자리를 잡은 안영락 이장은 외지인으로 마을 이장까지 하게 된 시골에선 흔치 않은 사례의 주인공이다 | 사진. 메이킹스

Q. 쉬려고 전원으로 오셨다고 하셨는데 다시 뭔가를 꾸준히 하시는 것 같다.

한 : 그저 쉬기만 하다보면 금단 현상이 새긴다. 고속으로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멈추면 평생 하던 것이니까 관성이 있지 않나. 건강이 지켜주는 한, 뭔가를 계속 해야 한다는 내적인 욕구가 있다. 강 교수님도 이번에 학교를 새로 들어가셨다.

강 : 은퇴 이후에 중국어 배우고 기타도 배우고, 마치 유치원생이 여기저기 학원 다니듯이(웃음) 이것저것 배웠다. 그러다 올해 친환경농업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너무 재미있게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하게 되면 신경회로가 활성화 된다. 치매가 예방된다.한 교수님께 합창을 배우면서 갑자기 숫자가 잘 외워지는 경험도 했다.

안 :이장일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다. 그러다 군대에서 악바리 근성도 생기게 됐고 체격도 좋아졌다. 직장 생활하면서는 삶의 전쟁터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다보니 강해진 것은 있다. 그러다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왔는데 당장 물이 없다고 하지 않나. 큰일 나겠다 싶어서 자처하고 마을에 수도를 끌어온 것에서 시작돼 여기까지 오게 됐다.

Q. 전원생활에 실패하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은데 이렇게 끈끈한 커뮤니티가 결성된 것이 사실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안 : 마을 일을 보다보니 이제는 사람이 보인다. 면면을 알다보니 이 분은 정서가 맞구나 싶다. 갖고 계신 소양이나 사고가 느껴지면 그 분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게 돼있다. 또 여기가 시골이지만 정말 옛날 시골처럼 아무집이나 벌컥 들어가진 않는다. 도회적인 에티켓을 가지면서도 단절되지 않는 공동체다. 반은 시골이고 반은 도시적 에티킷을 가진 곳이다.

한 : 이사 오고 시골 풍습대로 시루떡을 만들어서 돌렸다. 보통은 그렇게 하고나면 일회성으로 끝나는데, 원래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 그들의 지인들까지 쭉 알게 되면서 몇 번 독일 빵을 구워먹기도 하고 브런치 문화를 같이 즐기기도 했다. 또 자신의 자랑하는 특기를 가지고 모이기도 하고 함께 불멍도 해보고, 즉흥적이진 않지만 또 어느 날은 번개처럼 모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만나면서 교류하고 있다.

안 : 정기적으로 또 자유롭게 교류를 하게 되는데 그런 분들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면서 마을 일도 같이 상의하게 되고 같이 끌어가게 된다.

독일에서 음악을 전공, 이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해오던 한선미 교수는 우연치 않게 도장리에 자리를 잡았고, 주민들과 어울려 여전히 음악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 사진. 메이킹스
독일에서 음악을 전공, 이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해오던 한선미 교수는 우연치 않게 도장리에 자리를 잡았고, 주민들과 어울려 여전히 음악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 사진. 메이킹스

Q. 이런 생활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강 : 시골 생활이 도시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든다. 여기는 배달도 안 되고 외식도 제한이 있어서 외식비 적게 들고, 이웃과의 비교도 없다. 사회 생활을 할 때는 경조사비도 엄청나게 많이 드는데 은퇴하고 시골 들어오니 그런 지출도 줄었다. 생활비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의료비 외에는 크게 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 문화생활비도 적게 나간다.

안 :당연히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긴 한다. 하지만 실제로 부부 생활비가 한달에 200만원 이하로 든다. 친구들 만나면 그런다. 여기와 살면서 돈 드는 것은 쌀 사먹는 거, 술 값, 고기 값 정도라고. 텃밭하니 모종값 정도 더 들겠네(웃음). 원래 농사 지으며 사시던 분들은 저희보다 더 돈 들어갈 일이 없다고 하신다.

Q.앞으로 마을 회관이 어떤 장소로 활용이 될까.

강 : 마을 회관이 너무 좋지 않나. 카페 같다. 여기에서 매일 점심이라도 한 끼 같이 먹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다.

안 : 현재는 주1회 점심을 함께 먹고 있는데, 단순히 점심 해놓고 드시러 오세요 하면 안된다. 지금도 요가 수업 이후에 점심을 드시도록 해뒀다. 마을 회관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졌으니 이제는 소프트적인 프로그램을 잘 집어넣고 나면 웃으면서 이장직을 그만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식사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세끼 식사도 준비하고 싶다.

Q. 앞으로 도장3리는 어떤 공동체로 성장했으면 하는지 궁금하다.

안 : KBS의 한 다큐를 보니 일본의 노인복지마을이 나오더라. 그런데 우리 마을은 각자 좋은 집을 짓고 살지 않나. 각자의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꼭 노인들 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젊은 층도 어울리고. 좋은 뜻을 가진 기업과도 연계하여 복지사업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은 모여서 식사하고 거동이 불편하시면 집으로 식사를 배달해주고 식사 뿐 아니라 의료, 청소, 미용 등의 시스템이 갖춰져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마을로 만들어 보고 싶다. 현재는 큰 그림에서 그리고 있는 단계이며 하나하나 해 나가려면 혼자 못한다. 마음에 맞는 분들과 뭉쳐 운영진이 형성이 돼야 할 것이고 우리보다 젊은 세대들이 바통을 이어받아갈 것이다. 저희 마을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한: 좋은 뜻이 있으면 따를 것 같다. 물론 발 벗고 나서야 겠지만. 일단 도장리가 하나의 모델 마을로서 (잘 자리잡을 것이다)

+1
0
+1
0
+1
0
+1
0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