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밀양 투쟁,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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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국내 최초 핵발전소이다. 설계수명 30년을 넘겨 10년 수명이 연장된 이후 2017년에야 영구 정지가 이루어졌다. 지난 5월 6일, 한국수력원자력은 핵발전소 해체의 사전 절차에 해당하는 제염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앞서 필수적인 과정이니만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해체 승인은 시간문제이다.

2015~2017년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쳐 결정된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탈핵 에너지전환에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7~8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해체 작업은 건설과 운영을 잇는 핵발전 전주기의 완성을 의미하는 셈이니까, 이 또한 원자력 복합체에게 환영할 만한 사건이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 이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저장·처분의 법적 근거도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22대 총선 패배의 여파와 그에 따른 권력 누수 조짐에도 불구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 등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 정책 방향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다가올 12월 27일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은 법정 기념일로 성대하게 열릴 것이다. 물론 조만간 발표되어 논란 끝에 확정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의 내용에 따라 잔칫상의 규모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핵발전과 화력발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 단지는 초고압 전력 계통을 전제로 한다. 해상풍력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도 전력 계통 확충과 안정화를 위한 인프라 과제를 제기한다.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2022~2036)에 따르면, 765kV, 345kV, 154kV, HVDC(500kV)의 송전선로는 2021년 3만5190C-km에서 2029년 4만4950C-km, 2036년 5만7681C-km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계획한다.

탈탄소 탈핵 에너지전환은 생태환경과 건조 환경의 일정한 변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재의 송변전설비계획은 에너지전환 믹스는커녕 적극적 수요관리와 지역 간 생산-소비 격차 해소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 강제와 공식·비공식 폭력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14년 6월 11일 신고리 원전-북경남변전소 765kV 송전선로 건설을 강행하는 데 행사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이 다가온다. 오는 6월 8일, 밀양과 청도에서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가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 봉쇄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진상, 책임, 회복이라는 ‘전환적 정의’가 왜 이곳에서는 막혀있는지 다시 질문하고자 한다. 여전히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전기적 눈물은 전국 곳곳에서 피와 땀과 함께 흐른다. 충남 태안과 경남 하동은 ‘정의로운 전환’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곳이다. 느슨하지만, 탈석탄 정책 흐름에 따라 이미 몇몇 석탄발전소가 폐쇄됐다. 그리고 2025년 12월 태안1·2호기(서부발전), 2026년 6월 하동1호기(남부발전)를 시작으로 앞으로 본격적으로 석탄 발전의 단계적 폐쇄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과 ‘석탄발전사업의 철회 및 신규 허가 금지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은 21대 국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이 역시도 대체로 회의적인 분위기이다.

반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 노동자 모임’과 같은 실천적 활동이 지역별로 활성화되고 있는 흐름이 감지된다. 최근 일부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사측과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경쟁입찰로 인한 고용을 보장하며, 노동조합과 합의한다”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사측은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보장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실상 쟁의행위 찬반투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30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 행진’처럼, 노동진영과 기후진영의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 투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의로운 전환 첫 파업’, ‘기후정의 파업’이 실제로 곧 발생할 수도 있다. 때마침 발행된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 기후정의의 실천 안내서>(민주노동연구원, 2024년)와 공명하는 것 같다.

“전환의 과정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 결과도 정의롭지 못할 것입니다. 정부와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책을 뒤쫓아가는 노동자 투쟁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고민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노동조합 운동을 만드는 길에 함께 나섭시다!”(15쪽)

원청인 발전공기업의 방관과 정부 당국의 무책임이 합쳐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지 모른다. 산업전환, 노동 전환, 지역 전환으로 묶이는 정의로운 전환의 실험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펴낸 <공정전환정책 프레임워크 개발 연구>(한국환경연구원, 2023년)를 보면, 정책화, 제도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제법 많다. 문제는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관심과 무능력, 특히 반노동적, 반사회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5월 30일이면, 제22대 국회가 개원한다. 시민사회와 지역사회는 탈핵 국회, 기후 국회를 요구한다. 탈탄소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유력한 ‘공공재생에너지 전략과 공공협력 방안’을 위한 입법 과제도 제기된다. 그러나 총선 과정과 결과는 이런 바람을 충족하기에는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공개 변론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이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밀양, 앞으로 벌어질 태안과 하동은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의 동시적 공간이다. 5월 9일 출범한 ‘경기 3030 실현 100만 도민행동’은 시민과 공공이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선언했다. 이 역시 에너지전환의 대중적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행정과 입법의 국가기구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전환 격차를 줄이지 않고서는 제2의 밀양은 항상 잠재한다.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6월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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