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호캉스] 2천년 전 역사와 AI가 한 도시에…중국 청두의 두 매력
[여행+호캉스] 2천년 전 역사와 AI가 한 도시에…중국 청두의 두 매력
인구 2000만명이 훌쩍 넘는 중국 서부의 거점 도시이자, 세계 각국에서 ‘판다의 도시’로 유명한 중국 청두. 직접 눈으로 확인한 청두는 역사적 인물들의 흔적과 인공지능(AI) 기술의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또한 ‘슬로우 라이프’로 불리는 느린 삶의 미학과 최첨단 ‘하이테크 도시’를 향한 열망이 뒤섞여 색다른 매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청두 톈푸 국제공항에 내려 청두 중심을 향해 택시로 타고 달리면, 아무것도 없던 주변에 갑자기 수십 층짜리 초고층빌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사형 도시인 청두의 중심가로 향할수록 대로변 양쪽에 빼곡히 들어선 빌딩 숲과 곳곳의 건설 현장에 익숙해진다. 방사형 도시의 정중앙인 ‘톈푸 광장’에 가까워질 때, 높낮이가 다양한 건물들이 하나둘 여행객을 반긴다. 이즈음에 만날 수 있는 게 청두의 대표 문화유산인 무후사다.
제갈량과 유비를 기리는 도시

무후사는 삼국지의 배경인 촉나라 최고 장자방이자 전략가 제갈공명을 위해 만든 사당이다. 청두는 촉나라의 수도였던 만큼, 제갈공명의 위패와 유비의 묘 ‘혜릉’이 있는 무후사를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무후사 바로 옆에는 홍등이 빛나고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펼쳐지는 옛길 ‘진리’가 위치해 있다. 여행자에겐 옛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 세트’인 셈이다.
무후사에는 제갈공명의 삼국 통일 출사표 원문과 삼국지 관련 그림, 촉나라 문관과 무관들의 동상들, 그리고 약 1800년 전 세상을 떠난 제갈공명의 동상이 배치돼 있었다. 그의 동상은 그리 아름답거나 정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갈공명 동상 앞에서는 많은 이들이 줄지어 향을 피우며 참배했다. 유비의 묘 앞에도 꽃을 가져다 두며 참배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역사적 인물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삼국지의 영웅적 인물들을 기리는 도시인 청두에는 가볼 만한 곳이 넘친다. 기원전 고대 촉나라의 유물과 발굴 당시의 모습이 보존된 금사유적,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당나라 문인 두보가 4년간 머물며 240여 편의 시를 쓴 두보초당 등 시대도 이야기도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세계 최대 판다 연구기지는 말할 것도 없다.
거대한 최첨단 AI 시험장

하지만 청두는 중국 첨단 산업을 이끄는 곳이기도 하다. 청두 중심부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남쪽과 서쪽에는 거대한 ‘하이테크 존’이 조성돼 있다. AI 등 첨단 기술의 연구개발(R&D)과 실증에 활용되는 특별지구다. 총 244㎢에 달하는 면적은 여의도 면적(2.9㎢)의 약 84배에 달한다.
청두의 AI 시험장인 하이테크 존에는 쭉쭉 뻗은 도로와 강을 끼고 각양 각색의 고층 빌딩이 솟아 있어 마치 한국의 송도신도시 같은 느낌을 줬다. 도로와 기반 시설이 잘 정리된 만큼,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각종 AI 기술을 실증하는 테스트베드로 쓰기에 용이해 보였다.
여행자가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하이테크존의 자오쯔대로(Jiaozi Avenue)다. 이곳에는 중국 서부 최초의 로봇 거리 구역이 조성됐는데, 곳곳에서 다양한 로봇과 첨단 기술을 접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걷다가도 길거리에서 교통정리와 순찰을 하는 휴머노이드, 아파트 단지에서 음식을 배달 중인 배송 로봇, 길거리 청소 로봇을 만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7월 10일에는 스마트 로봇 플래그십 매장이 문을 열어서 직접 판매용 로봇을 모아둔 곳을 찾아가는 일도 가능해졌다.

바이두의 아폴로고 등 자율주행 택시도 하이테크 존에서 시범 운행을 하고 있어서 운전자 없는 택시를 만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직 외국인이 직접 이용하기는 힘들지만, 첨단 기술 일일 투어 등 관광 상품을 이용하면 탑승해볼 수 있다,
운이 좋지 않아 하이테크 존에서 아주 신기한 로봇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자오쯔대로를 끝에는 하이테크 존의 랜드마크 ‘톈푸 트윈 타워’가 있기 때문이다. 약 220m 높이의 쌍둥이 초고층 빌딩은 외벽 전체가 거대한 LED 스크린으로 이뤄져 있어 밤마다 화려한 영상을 선보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트윈 타워는 여행객들에게 기념사진 배경으로 인기 만점이다.
초고층 시티뷰와 함께하는 여유

자오쯔대로를 방문하기로 했다면, 하이테크 존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도심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져 있어 호텔 서비스에 비해 숙박료가 저렴한 편이고, 초고층이라 하이테크 존의 뻥 뚫린 시티뷰를 즐길 수 있다.
이번 일정의 숙소로 정한 ‘래디슨 컬렉션 호텔 하이테크존 청두’는 하이테크 존 한복판 윈두안 타워에 있다. 세계 최대 수준의 중국 국영 호텔 기업인 진장 인터내셔널이 래디슨호텔그룹과 손잡고 중국 서남부에 지난 7월 처음 선보인 그룹 최상위 브랜드 호텔이다. 호텔은 타워의 31층부터 46층까지를 쓴다. 객실이 고층인 만큼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진장강과 고층 빌딩의 조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객실 창은 도시 전망을 더욱 멋지게 볼 수 있게 돕는다.

레스토랑과 라운지도 44층부터 46층까지 배치해 전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청두에서 유명한 쓰촨 음식을 다른 중국 지역 음식과 함꼐 맛볼 수 있는 전통 중식당은 4층에 따로 마련됐다. 별관 1층에는 부대시설인 실내 온수 수영장과 스파, 피트니스 센터가 있다. 아래층에는 중국·유럽 협력 비즈니스혁신센터(CCEC)가 있다. 중국 정부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협력을 통해 마련한 공간이다. 유럽 기업의 사무실과 전시 공간,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오가는 회의실을 갖췄다.
청두 도심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은 편한 위치다. 지하철 톈푸5가역까지 걸어서 1~2분이면 갈 수 있다. AI와 게임 기업이 집중돼 있는 톈푸소프트웨어파크가 도보권에 있다.
한 번쯤은 슬로우 라이프를

거리에서 무인 차량과 로봇을 만나고 소프트웨어파크에 모여 있는 AI 기업들의 불이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면, 청두를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전통적인 청두의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청두를 두고 중국 사람들은 “한번 오면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청두에선 대나무 의자에 앉아 차를 우려 마시며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는 일상이 흔하기 때문이다.
멀리가지 않고 하이테크 존 안에서도 슬로우 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 톄샹쓰 거리는 하이테크 존에 있는 명소다. 명나라 때 지어진 ‘톄샹쓰(철상사)’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대 하천 ‘샤오자허’를 끼고 전통과 현대 문화가 어우러지도록 구성됐다. 전통적인 쓰촨성 스타일 건축과 인공 운하, 버드나무, 작은 다리가 트렌디한 가게들과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톄샹쓰 거리에서 청두식 일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넓은 야외 공간에 대나무 의자를 깔아둔 찻집을 찾자마자, 의자에 앉아 귀를 청소하거나 마작·카드 게임을 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중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야외무대에서 전통 예술 공연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얼굴에 쓴 가면이 바뀌는 ‘변검’과 1m가 넘는 긴 주둥이의 주전자로 묘기를 부리면서도 물을 흘리지 않고 따르는 ‘쿵푸차’ 공연이었다. 팬서비스도 확실했다. 공연자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는 차를 마시는 손님들에게 다가와 기념 촬영을 하거나 찻물을 따라줬다.
카드 게임을 하거나 귀를 청소하던 현지인들은 공연이 시작되자,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고개를 돌려 공연을 즐겼다. 그러다 이내 자리에 앉아 천천히 시간을 보냈다. 정신없이 공연을 보고 차를 마시고 나니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난 것 같았는데, 주변에 앉아 있던 현지사람 중 자리를 뜬 이들은 거의 없었다. 청두 사람들이 찻집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걸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한편으로는 가장 여유가 넘치는 청두의 두 매력이 강하게 인상에 남는 순간이었다.
청두(중국) = 임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