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에 쏠리는 시중 자금… 적금·IPO 청약·금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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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시중 자금이 이자를 더 주는 적금, 대규모 기업공개(IPO) 청약, 금 등 안전한 투자처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하고 가상자산 역시 등락을 거듭하자 적금 등 안전자산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616조3371억원으로 전달(647조8882억원) 대비 31조5511억원 감소했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요구불예금 잔액은 전월보다 33조6226억원 늘었고, 지난 2월에도 전월보다 23조5536억원 늘며 두 달간 증가 폭은 60조원에 달했다.

요구불예금이란 일반 정기예금과 달리 입금과 인출이 자유로운 예금으로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보통예금, 급여통장 등이 있고 단기 자금을 묶어두는 파킹통장도 포함된다. 금리가 정기예금 대비 낮지만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꺼내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주로 투자 전 돈을 임시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요구불예금이 감소세로 전환된 것은 다른 투자처를 이동한 자금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정기적금 잔액은 32조4530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803억원 증가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고금리 적금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늘었다.

대규모 기업공개(IPO) 청약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상반기 IPO 최대어로 꼽히는 HD현대마린솔루션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첫날인 이날 오전 10시 기준 40% 안팎의 상승세를 보이며 강세를 기록 중이다. 요구불예금이 대거 HD현대마린솔루션 청약증거금 등에 쓰인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예상 공모 금액은 6524억~7423억원에 달한다.

일러스트=정다운
일러스트=정다운

금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 1~19일까지 국내 금 시장의 일평균 금 거래대금은 169억1000만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KRX 금 시장이 개장한 지난 2014년 3월 24일 이후 역대 최대다. 지난달 말 기준 한국거래소 금 시장에서 1㎏짜리 금 현물의 1g당 가격은 10만4250원으로 전월(9만8470원) 대비 5.87% 올랐다. 금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투자 수요도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지난달 주식 및 코인 거래량은 크게 줄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1~26일까지 국내주식시장 국내 주식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0조2496억원으로 전달(22조7428억원) 대비 11% 줄었다. 가상자산 역시 합산 거래량이 전체 85%에 달하는 업비트의 경우 지난달 말 기준 하루 거래량은 2조8700억원으로 올해 들어 하루 거래량이 가장 많던 지난 3월 5일(21조원)에 비해 86.3% 급감했다.

문제는 요구불예금이 줄어들면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연 0.1% 내외 수준이기 때문에 은행은 이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요구불예금이 줄면 은행권 조달비용이 늘어나는데 이 경우 대출금리가 상승할 우려도 있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주요 조달 창구인 채권시장도 상황이 좋지 않다. 통상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전체 필요 자금의 10% 안팎을 금융채 등을 통해 조달한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채(AAA, 5년물) 금리는 3.75%로 지난 3월 말(3.57%) 대비 0.18%포인트 뛰었다. 은행은 채권 금리가 오르면서 은행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부담이 있는 상태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들어 투자처를 잃은 요구불예금이 급격히 증가하다가 지난달 수수료나 이자 면에서 더 많은 혜택을 주는 투자처로 자금이 이동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은행권 조달비용에 부담이 생긴 부분은 맞지만,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 은행채 금리가 내려 조달비용이 감소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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