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팝니다”…아이파크몰의 ‘도파민’ 승부수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용산점(아이파크몰) 리빙파크 3층 ‘도파민 스테이션’. 국내 첫 ‘치이카와’ 정규 매장은 이날도 이른 시간에 입장을 마감했다. 이곳은 시간 단위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데 오전부터 손님이 몰리면서 점심 무렵 현장 접수까지 끝났다.
커스텀 키보드 매장에 진열된 키보드를 하나씩 눌러 보는 고객이나 디저트 팝업에서 간식을 고르는 사람도 많았다. 명품 중심의 일반 백화점 공식에서 벗어난 풍경이었다.
최근 아이파크몰이 ‘취향’을 앞세워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명품과 대형 브랜드 중심의 전통적 MD 공식을 따르는 대신 취향이라는 기준 아래 공간을 재편한 결과다. 캐릭터와 게임뿐 아니라 불교, 종이접기까지 팬층이 형성된 콘텐츠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여놓으면서 MZ세대부터 가족 단위 고객까지 불러들이고 있다.
취향 집합소
아이파크몰은 지난해부터 ‘리빙파크’를 취향 중심으로 재편했다. 기존 리빙파크는 가구와 생활용품 중심이었으나 가구 매장은 4·5층에만 남기고 나머지 층은 만화와 캐릭터, 토이·하비, 카드게임 등 취미 콘텐츠로 채웠다. 1층에는 코믹북 전문 공간을, 6층에는 레고와 반다이남코 등 토이·하비 매장을, 8층에는 포켓몬 카드숍을 들였다.
이런 전략은 지난해 8월 3층에 문을 연 약 2000평 규모의 도파민 스테이션에 집약돼 있다. 도파민 스테이션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웹툰, 캐릭터, 커스텀 키보드 등 40여 개의 취향 콘텐츠를 한데 모은 공간이다. 일본 인기 캐릭터 치이카와, 글로벌 피규어 1위 브랜드 굿스마일컴퍼니 등의 매장이 대표적이다.

아이파크몰이 취향의 범위를 게임이나 캐릭터 같은 IP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아이파크몰이 선보이는 팝업들은 불교와 종이접기, 보드게임처럼 쇼핑몰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취미 콘텐츠가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진행한 불교 팝업은 국내 유통사가 처음 시도한 종교 팝업이었다. 고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아이파크몰은 올해 1월 한 차례 더 팝업을 열었다. 방문객 대부분은 20대였는데 종교와 무관하게 휴식과 재미를 찾아 방문한 경우가 많았다.
김기훈 IPARK아이파크몰 콘텐츠개발팀 부팀장은 “유통업계에서 종교를 다루는 건 사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도파민이라고 해서 꼭 자극적일 필요는 없고 사람들이 즐거움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도파민이라고 생각해 팝업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핵심은 팬덤
아이파크몰이 콘텐츠를 고르는 핵심 기준은 ‘팬덤’이다. 팬층은 좋아하는 대상의 구매에 적극적이어서 꾸준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파크몰 콘텐츠개발팀은 낯선 콘텐츠를 접하면 팬층이 형성돼 있는지부터 확인한 후 팝업 스토어로 선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이 취향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캐릭터나 취미에 몰두하는 소비를 일부 마니아의 영역으로 여겼다면 지금은 이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정판 디저트를 사려고 새벽부터 오픈런에 나서고 인증샷을 올리는 일도 소비자들에게는 하나의 놀이가 됐다.

김 부팀장은 “치이카와 매장 앞 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선다”며 “좋아하는 것 하나에 열광하는 모습이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디저트 역시 대표적인 취향 콘텐츠 중 하나다. 아이파크몰은 디저트 매장을 수시로 바꾸며 짧아진 유행 주기에 대응하고 있다. 도파민 스테이션 입구의 디저트 섹션에서는 10개 브랜드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단위로 교체된다. 아이스크림과 빵, 떡 등으로 콘셉트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재방문 고객에게 매번 새로운 상품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조명기 IPARK아이파크몰 F&B팀 과장은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브랜드의 파급력이 크다”며 “성수동과 망원동, 홍대 등에서 줄 서는 매장과 SNS 반응을 수시로 확인하며 새로운 디저트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남보다 먼저
아이파크몰은 다른 유통사들이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콘텐츠도 먼저 들여오고 있다.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아이파크몰 덕후 페스티벌(아덕페)’의 경우 아예 ‘덕후’를 행사 이름으로 내건 행사다.
아덕페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아이돌 등 다양한 취향 콘텐츠를 한자리에 모은 행사다. 아이파크몰은 열흘간 야외 정원과 카페거리 등 몰 곳곳에서 코스프레 촬영과 라이브 아이돌 공연을 열었다. 피규어와 카드를 사고파는 장터와 캐릭터 협업 팝업도 운영했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덕후 문화를 행사 전면에 내세운 건 이례적이다. 아이파크몰은 아덕페를 정례 행사로 키울 계획이다.

아이파크몰 경영진 역시 직원들이 전례 없는 시도를 이어가도록 독려하고 있다. 김 부팀장은 “경영진도 다른 곳에서 검증됐다는 이유만으로 콘텐츠를 가져오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다른 유통사들은 흥행에 실패하거나 논란이 될까 봐 조심스러워 하는 콘텐츠들도 우리는 팬덤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먼저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파크몰이 먼저 선보인 콘텐츠들을 다른 유통사들이 잇따라 들여오는 경우도 많다. 커스텀 키보드 팝업 당시 경쟁 유통사 바이어들이 현장을 찾았고 이후 다른 백화점과 쇼핑몰에서도 키보드 팝업이 열리기도 했다. 보드게임 팝업도 아이파크몰이 처음 연 뒤 다른 유통사로 확산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이파크몰은 이를 통해 집객력과 매출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도파민 스테이션은 개장 1년 2개월여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누적 방문객은 1260만명으로 하루 평균 3만명 가까이 다녀갔다. 인기 팝업이 열리는 기간에는 주변 식당과 카페 매출도 평균 40%가량 늘었다.
아이파크몰 전체 매출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54개월 연속 전년 같은 달보다 매출이 늘었다. 올해 1~9월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으며 이달 초에는 이미 지난해 연간 매출을 넘어섰다. 외국인 매출 비중도 지난해 1~2%대에서 올해 7~8%대로 높아졌다. 아이파크몰은 올해 외형 매출이 지난해 6495억원보다 30%가량 많은 8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PARK몰 관계자는 “IP뿐 아니라 취향과 취미를 기준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며 “고객이 다른 유통점이 아닌 아이파크몰을 찾아야 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