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애매한 재능인데 계속해도 되나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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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이미연] 수원 책방지기 넷이 모여 수원에 있는 작은 책방을 돌아다녔다. 광화문서림에 방문했을 때 책장 한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책 제목 <애매한 재능>이 꼭 내 이야기 같았다.

“제 이야기 같아서 들여놨어요.”

광화문서림 책방지기가 말했다. 그도 웃고, 나도 웃었다. “전 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봐요” 하면서.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책을 사다만 두고 여태 읽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로 책을 펼치기가 망설여졌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엇도 될 수 없는’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와 책을 읽기도 전부터 기운이 빠졌다.

자기 푸념만 가득한 글일까 봐 걱정도 됐다. 굳이 책으로까지 우울함을 읽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읽고 나서 ‘애매하다더니 전혀 아니잖아?’ 할까 봐 책 읽기를 미뤘다.

영영 읽지 않은 책으로 묻힐 뻔한 이 책을 드디어 꺼냈다. ‘재능 검증은 그만 됐고 마감 엄수를 위해 성실하게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은이 소개 글이 자꾸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칫 슬프고 짠해질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낸다. 재학 시절 선생님의 “너는 백일장에 나가 본 적 없으니 나가봤자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에 큰소리로 대들었다고 한다. 또 관심 가는 일 중에서 아주 완벽히 망하지 않을 길을 살살 골라 걸어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글쓰기를 지켜내기 위한 생계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마트에서 판촉 행사 아르바이트에, 아동극단에서 각색 작업을 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생각보다 항상 적다. 방송국에서 구성작가로 일하고 대필작가로 책을 내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등 작가의 고군분투기가 펼쳐진다.

수미 작가뿐 아니라 배우가 꿈인 아름이, 우동가게를 운영하는 아영이, 카페를 운영하는 무명 배우 기봉이도 흥미롭다. 특히 수미 작가가 극을 쓰고 기봉이 연기한 1인극 <정상> 상연 이야기는 따스하다. 그 중 발췌해보면,

신기하게 누구도 “이 연극 되겠지?” “완전 망하면 어쩌지?” 하고 근심과 우려를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정상>은 그런 연극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만든 연극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만든 연극이고 우리가 설레서 하는 연극이었다.(193쪽)

이 책은 수미 작가와 달님 작가(<나의 두 사람> 저자)가 오픈 채팅방에서 나눈 글을 모아 펴냈다. 나 역시 책방에서 오픈 채팅방으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해서 집필 과정이 흥미롭고도 반갑다. 하지만 개별 글이 책으로 모이며 조금 산만해진 느낌은 아쉽다. 이 책에서는 빼면 더 좋았을 글도, 더 쓸 수 있을 글도 있어서다. 물론 작가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욕심이겠지만.

<애매한 재능>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목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이 작고 겸손해 보일지 모른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더 좋은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가진 그릇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비로소 ‘무언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이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일을 평가 절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5쪽)

내가 책 읽기를 미룬 사이, 수미 작가는 두 번째 에세이를 냈다. 이 책 한 권으로 집필이 끝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애매한 재능인데 계속해도 될지 묻는 사람에게 행동으로 답해주는 듯하다.

자기 계발서의 채찍질 속에서 이 책은 잠시 쉴 틈을 내어준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반짝인다’고 말하는 이 책을 더 많은 이가 읽어보길 바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평범한 사람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북에디터 이미연 |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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