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기술제공 거절한 현대차, ‘하이브리드 기술독립’ 빛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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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공개…2004년 하이브리드 개발실 설립

2009년 LPi 하이브리드 거쳐 2011년 하드타입 하이브리드차 양산

토요타 기술‧부품 제공 제안 있었으나, 기술종속 우려해 거절 후 ‘독자개발’

현대자동차가 1995년 제1회 서울모터쇼에서 공개한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FGV-1(Future Green Vehicle-1). ⓒ현대자동차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전성기를 맞았다.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과도기가 생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찌감치 하이브리드차 시장에 뛰어들어 높은 경쟁력을 갖춰 놓은 일본 토요타자동차, 그리고 토요타에 맞서 독자 기술로 경쟁을 벌이며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확장해 온 한국의 현대자동차그룹은 하이브리드차 전성기를 한껏 누리고 있다.

20일 회사측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하이브리드차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90년대였다. 모든 친환경 제품의 개발은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당시 현대차그룹이 주목한 것은 1997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였다.

교토의정서 채택에 앞서 환경 규제 강화 목소리는 커졌고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하이브리드차 개발의 밑그림을 그렸다. 1995년 제1회 서울모터쇼에서 프로 엑센트를 기반으로 제작한 첫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FGV-1(Future Green Vehicle-1)을 선보인 게 시작점이었다.

토요타가 1997년 도쿄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양산차 프리우스를 내놓으며 시장 개척자 역할을 했으나, 현대차그룹도 일찌감치 하이브리드차 시대를 맞을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교토의정서 채택, 그리고 토요타의 프리우스 양산차의 등장은 현대차그룹의 발길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교토의정서에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온실가스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2005년부터 각국에서 자동차 배출가스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예고됐다.

하지만 양산 하이브리드차 출시까지의 길은 험난했다. 우선 선행 개발 단계부터 밟아야 했다. 2000년 베르나와 카운티를 기반으로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었다.

현대자동차가 2004년 개발해 정부기관 공급용으로 50대 한정 생산한 클릭 하이브리드. ⓒ현대자동차

2004년에는 남양연구소에 ‘하이브리드 개발실’을 만들어 본격적인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나섰다.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개발(R&D) 인력 33명을 선발해 만든 이 조직의 목표는 ‘독자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이었다. 하이브리드 기술을 선점하고 있던 토요타에 맞서 독자 기술을 확보해 시장에서 당당히 맞서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그해 16개월의 개발 기간을 투입해 좀 더 완성형에 가까운 클릭 하이브리드를 내놓았다.

클릭 하이브리드는 정부기관에 50대가 공급됐지만, 본격적인 양산차는 아니었다. 구동모터가 엔진을 보조하는 소프트타입 하이브리드 모델로, 당시 기술제휴를 맺은 히타치로부터 모터 및 인버터를 공급 받고, 파나소닉의 니켈수소 배터리를 각각 탑재해 18km/ℓ의 연비를 냈다. 주요 부품을 일본 기업들에 의존해야 했고, 연비도 획기적으로 높지 않았으며, 양산이 가능할 수준의 가격 경쟁력도 갖추지 못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베르나와 프라이드 기반 하이브리드 모델도 개발하면서 기술력을 쌓는 한편, 기술적 한계도 확인했다. 하이브리드차의 핵심 가치인 연비 측면에서 선도 업체인 토요타와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인지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현대차그룹 하이브리드 개발실은 양산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시장성이 문제였다. 국내 하이브리드차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에 판매대수가 한정적이었고, 판매 수익을 통한 개발비 회수 가능성은 희박했다. ‘차별화된 가치를 지닌 차량’이라는 개발 목표를 달성하면서 비용 손실은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또,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 가솔린과 디젤에 비해 유지비용이 저렴해야 한다는 목표도 있었다.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은 액상분사방식으로 기존 LPG 엔진의 단점(연비, 출력, 겨울철 시동 문제)을 보완한 LPi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이었다. 하이브리드 개발실은 이 엔진을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완성했고, 2009년 7월 이를 탑재한 현대차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기아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를 선보였다.

기아가 2009년 7월 출시한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 ⓒ기아

아반떼‧포르테 LPi 하이브리드는 자체설계와 국내 생산을 동시에 이룬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모터, 배터리, 인버터, 컨버터, 제어기 등의 핵심 부품을 현대차그룹이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외자 도입이 아닌 국내 생산까지 성공하며 대중을 위한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핵심 부품 중 배터리는 그동안 사용됐던 니켈수소 배터리 대신 세계 최초로 양산차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 점도 돋보이는 장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현대차그룹의 최종 목적지는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이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모터가 직접 차를 움직여 최적의 효율을 내는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모델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또, 구동모터만으로 주행 가능한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해야만 토요타와 승부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도 있었다. 토요타의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순 없었다. 이미 토요타가 관련 특허를 다수 소유하고 있어서다.

개발 과정에서 토요타로부터 기술과 부품을 제공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쉽고 빠르게 양산 단계에 이르겠지만, 기술 종속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 미래 하이브리드차 시장 선도의 꿈은 포기해야 했다.

토요타의 제안을 거절한 현대차그룹은 독자적인 방식의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 방식으로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개발 방향은 토요타와의 차별성을 갖추면서도 현대차그룹의 파워트레인을 활용할 수 있는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TMED)으로 정해졌다.

시스템 방식을 결정한 후 모터, 인버터와 같은 핵심 부품의 개발을 위해 해외 기업과 협력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들은 개발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협조적이거나 터무니없는 비용을 제시했고, 결국 성과 없이 끝을 맺었다.

해외 기업과의 협력 무산은 오히려 핵심 부품 내재화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자체 기술력으로 소프트타입의 LPi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한 저력을 바탕으로 여러 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한 끝에 구동모터 등 핵심 부품을 내재화한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독자 개발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2011년 5월 출시산 쏘타나 하이브리드의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 ⓒ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의 하드타입 하이브리드는 엔진-엔진클러치-구동모터-자동변속기로 구성돼 있다. 엔진에는 HSG(시동발전기)가 장착돼 EV모드로 주행할 때는 엔진클러치가 엔진과 구동모터의 연결을 끊고 구동모터로만 주행하며, HEV모드 전환 시에는 HSG가 엔진을 깨우고 회전속도를 동기화해 엔진과 구동모터를 엔진클러치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유성기어가 적용된 동력분기 구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토요타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일반 변속기가 장착된 병렬형 구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구조적 차이로 인해 자사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빠른 응답성, 우수한 발진 성능, 다이내믹한 운전성 등을 구현한다고 강조했다. EV모드에서의 전달 효율도 더 뛰어나고 EV모드의 최고속도도 우세하며, HEV모드에서는 중고속 및 정속 주행 시 성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2011년 5월 이 시스템을 탑재한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가 세상에 나왔다. 펌핑로스(피스톤의 왕복운동 중 폭발 에너지의 일부가 혼합가스 흡입‧배출 과정에서 손실)를 줄인 밀러 사이클 방식 엔진과 독자 기술로 완성한 구동모터, 하이브리드 파워 컨트롤 유닛(HPCU)과 배터리의 조합으로 21.0km/ℓ의 높은 공인연비를 갖췄다.

당시 쏘나타‧K5 하이브리드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의 공인연비는 19.7km/ℓ였다. 후발주자인 현대차그룹이 선두 토요타를 따라잡았다는 사실은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현대차‧기아의 다양한 하이브리드 차종들. ⓒ현대차‧기아

이후 현대차그룹은 여러 차급에서 잇달아 하이브리드차를 내놓으며 폭넓은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갖췄다. ‘하이브리드차 전성기’를 최상의 상태에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은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 미디어 ‘에드먼즈(Edmunds)’의 자동차 시상식인 ‘탑 레이티드 어워드 2024(Top rated Award 2024)’는 ‘최고의 SUV’로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를 꼽으며 현대차그룹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했다.

앞서 지난 2022년에는 미국의 뉴스 매거진 ‘U.S. 뉴스 & 월드 리포트’의 ‘2022 경제적 가치가 가장 뛰어난 자동차 시상식(Best Cars for the Money Awards)’에서 주요 수상 부문 중 하나인 ‘최고의 하이브리드‧전기차’에 아반떼 하이브리드가, ‘최고의 하이브리드‧전기 SUV’에는 투싼 하이브리드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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